'女월드컵 대박' 호주가 갈 길은…반면교사로 소환된 2002 한국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흥행에 성공한 개최국 호주가 밟지 말아야 할 전철로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국이 소환됐다.
'월드컵의 유산'을 축구 발전의 원료로 충분히 쓰지 못한 아쉬운 전례로 언급된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이 쓴 '호주가 월드컵의 유산을 생각할 때 한국의 사례는 경고가 된다'는 제목의 해설기사를 통해 게재해 21년 전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봤다.
가디언은 "국가적 열광의 물결이 일었다. 유럽 팀에 진 실망도 잠시, 자부심·새 시대에 대한 낙관에 압도됐다. 정치인들은 경기장에서 스카프를 맸고, 신문엔 축구 보도가 넘쳤다"며 "이는 호주만 경험한 게 아니다. 한국도 2002 남자 월드컵 때 같은 상황이었다"고 썼다.
이어 "'태극전사'가 독일과 4강전에서 0-1로 패한 지 고작 1년 만에 월드컵 영웅 서사가 마치 없던 일처럼 느껴졌다"며 "(월드컵) 신바람이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 국민이 월드컵 4강 신화가 주는 열광에 흠뻑 빠졌지만, 이때의 관심이 K리그 인기·축구 행정 등 한국 축구의 구조적 측면을 당장 바꿔놓지는 못했다는 주장이다.
월드컵 직후 개막한 프로축구 개막 라운드 관중이 도합 12만3천명이나 됐다고 짚은 이 신문은 결국 해당 시즌을 통틀어 보면 K리그를 향한 관심이 '반짝 열기'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2002년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K리그 구단들에 단순히 현재의 금전적 이익에 취하지 말고 미래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무시당했다. 한국 구단들의 '톱다운' 지배구조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고 해설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감독의 후임을 뽑는 데만 너무 초점을 맞춰 월드컵이 가져다준 관심과 인지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또, 월드컵을 위해 건설된 경기장들도 K리그 관중 수요보다 큰 규모로 지어졌고, 대부분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자리 잡아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짚었다.
이어 월드컵 인기를 등에 업고 K리그 등 국내 경기에 대한 장기적 중계권 협상이 이뤄졌을 법도 하건만, 그러지 못한 탓에 곧 야구가 중계·보도량에서 다시 정상을 탈환했다고 봤다.
축구계 곳곳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자 나타난 결과가 2011년 K리그를 떨게 한 승부조작 사태며, 최근에서야 리그가 관중 수를 회복 중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다만 가디언은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얻은 '문화적 힘'은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가디언은 "2002년 5월 한국은 국제적으로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이 투자하고 관광할 만한 역동적이고 현대적 한국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다음 단계인 '한류'가 등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축구' 그 자체에 지속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애를 먹었지만 2002 월드컵은 국가 전체를 바꿔놓은 '축구의 힘'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영국 출신 칼럼니스트인 듀어든은 한국 등 아시아 축구에 관심을 두고 가디언 등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한국에 거주한 적이 있는 등 '지한파' 외신 언론인으로 꼽힌다.
한국처럼 개최국 호주도 이번 여자 월드컵인 역대 최고 성적인 4위로 마무리했다. 선전과 함께 대회가 호주에서 크게 흥행했다.
잉글랜드와 이번 월드컵 4강전이 호주 전역에서 평균 700만명이 넘은 시청자를 끌어모아 2001년 집계 이후 최다 기록을 썼다.
현지 시청률 조사업체 오즈탐에 따르면 이 경기 실시간 시청자 수는 1천115만명까지 증가했고, 현장도 흥행에 성공했다.
호주가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른 3경기 모두 전 좌석이 동났다. 아일랜드와 개막전, 덴마크와 16강전, 잉글랜드와 4강전 모두 최대 수용 관중인 7만5천784명이 찾았다.
'월드컵 특수'를 누린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19일 성명을 통해 2억 호주달러(약 1천720억원)를 전국적 여성 스포츠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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