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작, 통정매매, 개미는 들러리…범죄 악용된 ‘자사주 취득’

한겨레 2023. 8. 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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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톡
유화증권 회장 ‘법정구속’
창업주-2세, 지분 승계 과정에서
세금 줄이고 지배력 강화 목적
통정매매 벌이고 자사주 이전
증권사 사주의 부정거래 ‘단죄’
서울 여의도에 있는 유화증권 본사의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상장기업이 자기주식(자사주)을 취득할 때는 주주평등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자본시장법은 자사주 취득 방법으로 ‘거래소 시장에서 매수’와 ‘공개매수’ 두가지만을 허용한다. 모든 주주에게 공평한 매도 기회를 제공하라는 취지에서다. 자사주를 취득하려는 기업은 공시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취득 전날에는 한국거래소에 취득물량과 예상호가 등을 담은 매매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사주 거래는 한국거래소 회원 증권사에 개설한 별도의 자사주 매매전용계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사주와 관련해 이렇게 깐깐한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는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명재권)는 지난 8일 자사주를 통정거래한 혐의로 기소된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주식을 사고파는 양쪽이 서로 매수·매도 물량과 거래시간을 짜고 거래하는 통정매매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시장거래의 공정과 신뢰를 누구보다 중시해야 할 증권사 대표가 자사주를 불법거래했다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분 상속세 150억원 아끼려

유화증권 창업주는 윤장섭 명예회장(2016년 5월 작고)이다. 아들 윤경립 회장은 2008년 회장직을 승계했다. 창업주는 이후에도 지분 12%(142만주)를 보유한 채 윤 회장에 이어 2대 주주의 지위를 유지했다. 2015년 창업주의 병세가 깊어지자 상속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분을 그대로 상속받으면 150억원 정도 세금이 발생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주식은 평가기준일 전후 2개월 동안 주가 평균을 과세 기준으로 삼는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에는 50% 세율에다 30%가 할증된다.(2020년 세법 개정 이후 가산세율은 20%)

1심 판결을 보면, 윤 회장은 주식 상속에 따른 가중 부담을 피하면서 유화증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업주 지분 142만주를 현금화하기로 한다. 여기에 유화증권과 우호적인 투자자가 동원됐다. 윤 회장 일가는 창업주 지분 가운데 13만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매수하는 한편 25만주는 장내 거래로 사들인다. 창업주가 장내 매각한 25만주를 어떻게 윤 회장 일가가 그대로 매수할 수 있었을까? 통정매매를 했기 때문이다. 35만주는 ㄷ증권과 ㅇ증권 등 2개 증권사가 블록딜로 사갔다. 창업주 잔여 지분 69만주는 유화증권이 직접 자사주로 취득했다. 모든 주주에게 동등한 매도 기회를 줘야 할 자사주 장내 거래에서 유화증권이 창업주 지분만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불법적 통정매매였기에 가능했다.

이런 거래들을 통해 창업주 지분은 모두 현금화된다. 그리고 이 현금은 창업주 사후 윤 회장에게 할증 적용 없이 상속된다. 만약 합법적 장내 경쟁매매를 통해 창업주 지분을 매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주주들이 매수해가는 지분만큼 최대주주 쪽 지분율이 하락한다. 지배력이 약화된다는 이야기다. 윤 회장 일가가 상속받는 현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당시 유화증권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5000주 안팎에 불과했다. 142만주를 수십차례 분산매각한다 해도 평소 거래량보다 훨씬 많은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창업주가 회수할 수 있는 현금이 줄어들 것이고, 이는 곧 윤 회장이 상속받을 현금이 감소한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재판부는 결국 세금 회피, 상속재산 가치 증가, 지배력 강화 등 어려가지 목적을 위해 윤 회장이 불법거래를 고안해낸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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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취득, 일반주주는 들러리

유화증권은 창업주 지분 69만주를 흡수하기 위해 두번에 걸쳐 자사주 취득 공시를 냈다. 1차(2015년 11월)와 2차(2016년 3월) 모두 취득 목적을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라고 밝혔다. 자사주 통정매매 과정에서 윤 회장 쪽은 시세개입 행위를 하기도 했다. 창업주 쪽과 유화증권 간 통정거래로 1만5000원에 거래가 체결됐다. 이제 매도1호가는 1만5100원이 되었다. 윤 회장은 친척 계좌를 이용해 1만5100원에 50주 매수주문을 넣는다. 체결가는 1만5100원이 되었다. 회사가 자사주 매수주문을 낼 때는 호가 상한선이 있다. 주문 직전의 최고 체결가격이다. 즉 유화증권은 이제 1만5000원이 아니라 1만5100원에 매수주문을 낼 수 있게 됐다. 통정거래 가격을 올릴수록 창업주는 더 많은 매각대금을 챙겨갈 수 있다. 이는 곧 윤 회장이 상속받을 돈이기도 하다.

2차 취득기간(2016년 3월24일~6월23일) 동안 유화증권은 60만주를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공시한 60만주 취득이 완료되거나, 공시물량을 다 매수하지 못했더라도 취득기간이 끝나면 5일 안에 금융위원회에 자사주 취득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공시물량을 다 매수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도 기재해야 한다. 유화증권은 2차 취득 초반부인 4월 초 창업주 최종 잔여분 40만주 매수를 완료했다. 60만주를 채우기 위해서는 20만주 추가매수가 필요했지만, 유화증권은 애초부터 그럴 의사가 없었다.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은 겉포장이었다. 금융위원회에 자사주 매수 결과보고서를 내기 위해서는 취득종료 시점(6월23일)까지 노력했다는 흔적은 남겨야 했다. 유화증권은 허수성 매수주문을 제출해 일반주주들의 매도물량을 회피하기로 했다. 예컨대 현재 시세가 1만5600원인 상황에서 매수 10호가인 1만5100원으로 주문을 내는 식이었다. 거래가 체결될 수가 없다. 유화증권은 시가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 즉 허수성 매수주문을 474회나 제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증권사 두곳이 보유한 창업주 지분 가운데 12만주를 통정매매로 사들였다.

일반투자자와의 거래는 고의로 회피하면서, 증권사 보유분은 비싼 가격에 매수해준 것이다. 유화증권은 공시물량 대비 8만주 적은 52만주밖에 취득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거래량 부족에 따른 주문수량 미체결”이라고 거짓 기재했다.

자사주 취득은 증권시장에서는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통한다. 그래서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화증권의 자사주 취득은 결국 윤 회장 일가 이득을 챙겨주는 수단에 불과했던 셈이다. 변호인은 단순 통정매매일 뿐이며, 법에서 금지하는 통정거래의 목적(다른 투자자로 하여금 주식거래가 성황인 듯 알게 하거나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함)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 178조가 금지하는 부정거래행위, 즉 부정한 수단이나 계획, 기교를 사용한 행위도 아니라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회사 자금을 동원해 통정거래를 하면서 고가 매수주문과 시가·종가 관여 등의 시세개입 행위, 빈번한 허수주문 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자본시장의 공정성, 신뢰성, 효율성을 해쳤으므로 부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경제 칼럼니스트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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