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여성 IOC 선수위원’ 도전하는 골프 여제 박인비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2023. 8. 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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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골프 이야기] 특정인 내정 소문 실력으로 돌파… “침묵의 암살자 별명처럼 철저히 준비할 것”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한국 후보에 도전장을 낸 박인비가 8월 10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IOC 선수위원 평가위원회 비공개 면접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여자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 박인비(35)가 내년 7월 '제33회 파리올림픽' 기간 펼쳐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에 한국을 대표해 출마한다.

진종오(44·사격), 김연경(35·배구), 이대훈(31·태권도), 김소영(31·배드민턴)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박인비는 대한체육회 평가위원회 비공개 면접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만장일치로 최고점을 얻어 원로회의 추천을 받았다. 이후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에서 반수 이상 표를 얻어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대한체육회는 8월 말 IOC에 박인비를 선수위원 선거 후보로 통보할 예정이다.

진종오·김연경 등 쟁쟁한 경쟁자 따돌려

IOC 선수위원은 IOC와 현역 선수 사이에서 연계 역할을 해 '스포츠 외교관'으로도 일컬어진다. IOC 위원과 동일한 자격을 갖고 동·하계 올림픽 개최지 결정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한국은 그동안 선수위원 2명을 포함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까지 총 11명의 IOC 위원을 배출했다. 그중 여성은 단 1명도 없었다. 박인비는 한국 첫 여성 IOC 위원이라는 새 타이틀도 노린다.

박인비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기에 앞서 체육계에선 "A가 사실상 이미 후보로 내정된 상태"라며 "나머지 후보는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용산'의 의지가 담겼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까지 나돌았지만 박인비는 올림픽 업적, 외국어 능력 등을 평가하는 서류 심사와 비공개 면접에서 오직 실력만으로 한국 후보로 선출됐다. 한국 첫 IOC 선수위원은 문대성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선출돼 유일한 아시아계 선수위원으로 활약했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유승민(대한탁구협회장)이 당선했다.

IOC 선수위원은 최대 23명으로 12명(하계 8명·동계 4명)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나머지 11명은 IOC 위원장이 임명한다. 임기는 8년이다. 4년마다 하계 4명, 동계 2명의 선수위원을 뽑는다. 파리에서 선출하는 선수위원도 4명이며 모두 다른 종목 선수여야 한다. 파리올림픽 참가 선수는 개인별로 최대 4표까지 행사할 수 있다. IOC 선수위원은 국가당 1명만 둘 수 있다. 유승민 선수위원의 임기가 내년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만료되면서 박인비가 선수위원 선거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수위원 선거에는 당해 올림픽과 직전 올림픽 출전 선수만 출마할 수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21승을 거둔 박인비는 4대 메이저대회를 제패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여자골프 현역 최고 스타 중 한 명이다. 여자골프가 116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까지 목에 걸어 최초 '골든 슬램'을 이뤄냈고, 2021년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박인비는 "리우올림픽과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건 선수위원을 향한 꿈 때문"이라며 "올림픽 정신으로 리우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제 그 정신을 세계에 알리며 '올림픽 무브먼트'(올림픽 운동)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인비가 '국내 예선'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데는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생활해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것이 한몫했다. 선수위원이 되려면 IOC 공식 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 중 하나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 일찌감치 선수위원에 뜻을 둔 박인비는 "여론이나 많은 분을 통해 알려질 수 있었지만 '침묵의 암살자'라는 내 별명처럼 조용히 철저하게 준비했다. 공부 자료들이 굉장히 방대해 그 부분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골프·프로선수라는 약점 극복해야

박인비가 한국인 세 번째 선수위원이자, 여성 첫 위원에 당선되기 위해선 앞으로가 중요하다. 파리올림픽에 나설 각국 올림피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체육계 일각에선 아무래도 골프가 올림픽 비주류 종목이라며 걱정한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저변이 넓은 종목이 아닌 데다, 올림픽에 다시 입성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가 대부분인 올림픽에서 프로선수라는 점은 득보다 실이 되기 쉽다. 하지만 박인비는 굳건하다. 그는 "절대 불리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골프는 총 227개국에서 방송되고, 10억 가구가 즐기는 굉장한 인기 스포츠"라며 "도쿄올림픽 때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파우 가솔(스페인)이 선수위원 투표 1위를 차지한 만큼 골프라는 인기 스포츠가 갖는 종목의 장점이 굉장히 클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 전 위원과 유 위원 모두 과거 올림픽 현장에서 적극적인 유세 활동을 펼쳤다. 글로벌 스타가 아니었던 문대성(태권도)이 1위, 유승민(탁구)이 2위로 당선한 비결이다. 평소 내성적 스타일로 알려진 박인비는 "대회 때 무척이나 집중해야 하고 항상 조용해야 하는 골프 종목 특성상 그런 부분이 있지만 나는 목표가 주어지면 집요하게 해내고야 마는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다"며 "정말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 계획이다. 유 위원이 선거운동 기간 450㎞를 걸어 5㎏이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500㎞를 걸어 10㎏ 감량을 목표로 열심히 뛰어다닐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인비가 유 위원의 뒤를 이어 IOC 무대를 누빌 선수위원으로 당선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 외에도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다. 어느 국가, 어떤 종목 선수들을 전략적으로 공략할지와 4표씩 행사하는 선수들에게 4순위라도 선택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한체육회 및 가맹단체의 유기적인 지원과 협조도 동반돼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파리올림픽까지 박인비의 선거 활동을 도울 4명으로 구성된 전담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세계 여자골프 무대를 평정한 박인비의 IOC 선수위원 도전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골프 여제 어깨에 대한민국 체육계의 국제적 위상이 달려 있다.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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