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력, 만병통치약은 없다
불안과 무기력감으로 입원 중인 40대 남성과의 대화다. 저녁 약을 먹으면 낮에 졸리고, 약을 줄이면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한다. 잠을 잘 오면서도 낮에는 기운이 나는 약을 찾아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영양가는 높지만 살은 찌지 않는 음식처럼 말이다.
의사가 하는 일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시도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때 환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과 대처법을 예측해서 설명해 준다면 약과 함께 안심을 주는 믿을만한 의사가 될 것이다.
요즘 이 사회에는 무슨 이유인지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각종 재해와 더불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범죄까지 일어나고, 온 사회가 분노와 울분에 차 있는 것처럼 서로를 갑질한다. 절망에 빠진 자살 사고 뒤에는 또 수많은 사람들이 항의하고 분노한다. 폭력 범죄 뒤에는 그 사건을 흉내 내는 글이 수십 건 올라오고,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예비 범죄자를 처벌하고 미리 막아야 한다는 주문도 쇄도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상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사회 각계에서는 대책 마련에 다급해졌다. 원인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고, 여러 전문가 집단에서는 각자의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오래전에 예견된 것이어서 이전에 제안했던 대로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사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그 원인이 하나일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어서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기보다 몇 가지만 고려해서 빠른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사실 과학과 논리학에서도 ‘가정을 최소화하여 단순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중세시대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오컴의 면도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장 단순한 논리로 설명해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말이리라.
하지만 사회 속 폭력이나 경제 현상, 문화 유행 같은 것들이 이렇듯 단순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는 소위 전문가들이 많지만, 사회문제는 훨씬 복잡해서 원인도 해결책도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한 두가지 대책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몇 명의 범죄자에게 정신질환의 경력이 있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를 미리 치료하면 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가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을 사용하면 많은 질환을 치료·예방할 수 있다는 치료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건강·시사 프로그램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사실은 여러가지 도움되는 보조 요법 중 하나일 것인데, 전문가 명찰을 단 사람은 나와서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에서도 마음을 굳게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잘 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많지만 실생활에서 그 효능을 체험하는 분들이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현실은 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해결책을 주장하는 사람의 언변이 화려하거나 인지도가 있고, 정책 입안자의 입장에서 손쉽게 도입해서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 같으면 일단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문제의 현실적 원인을 한 두가지로 정의하면 그 밖의 다른 많은 요인들은 무시되고, 사람들은 마치 ‘그것 하나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것으로 여긴다. 설명이 된 것으로 치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한가지의 해결책은 없는 경우가 많고, 모든 해결책에는 부작용도 동반한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나 혐오가 모두 정신질환의 방치로 인한 것이 아니겠지만, 일단은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예방과 조기진단, 적절한 치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와 병원에 그 책임을 다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필요한 행정과 사법 체계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확립해야 하고, 이를 수행할 현장 실무진의 운영을 위한 조직 정비가 필수적이다. 서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돌아가는 시스템 말이다.
또한 그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문제나 치료 선택권 등의 부작용들을 하나하나 대처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 대한 예의 규범과 함께 폭력에 단호하고 안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의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든 자신의 험한 감정과 행동을 타인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 해도 안전하고 체계가 잡힌 환경에서는 함부로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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