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흔들리는 김정은표 '내각책임제'…정상작동 가능할까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직후부터 강조해온 '내각책임제'가 흔들리고 있다.
내각책임제는 내각이 국가관리, 특히 경제운용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책임지고 끌어 나간다는 제도로, 내각총리를 대부분 경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관료 위주로 기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선 김정일 체제에서도 내각책임제가 있었지만, 이 제도는 김정은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관심을 받으며 공고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승계 직후인 2012년 4월 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담화에서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가는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며 '경제=내각'이라는 등식을 공식화했다.
4년 후인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는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의 요구대로 나라의 전반적 경제사업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모든 경제부문과 단위들이 내각의 통일적인 작전과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규율과 질서를 엄격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북한에서 내각총리는 호명 서열이 김 위원장에 이어 2∼3번째에 위치하면서 정치적 위상도 올라갔다.
또 내각총리가 경제현장을 직접 찾는 '현지요해'도 빈번히 이뤄지면서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경제를 책임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관심에도 경제를 내각이 도맡는 내각책임제는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평안남도 안석간석지 수해복구현장을 방문하고 김덕훈 내각총리를 겨냥해 이례적으로 강한 톤의 질책과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다"며 "무책임한 일본새(사업태도)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었다"고 지적했다.
북한매체에 공개된 사진 속에서 김 위원장은 수행한 간부들에게 화가 난 모습으로 손가락질하며 지시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 중앙검찰소 등 권력 및 사법기관이 총동원돼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북한 경제 상황이 김덕훈 총리 때문일까.
김 총리는 그나마 북한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제관료의 한 명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에서 만난 북한 관리들은 김덕훈이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높이 평가했다"며 "박봉주 등 이전 총리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의 내각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것은 시스템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권력의 핵심은 노동당에서 출발한다. 경제정책도 집행은 내각이 하지만,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노동당 결정에 따른다.
그러다 보니 돈이 되는 이권사업은 대다수가 노동당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경제 분야에서 군의 권능도 절대적이다.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제2경제'를 운용하는 군부는 항상 자원을 우선으로 배분받고 철광석이나 무연탄 광산 등 알짜배기 사업을 직접 운용한다.
또 군은 젊고 건강한 노동력까지 보유하고 있어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의 북한경제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내각책임제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함으로써 최고지도자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각책임제가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현장이나 지방을 찾아서 내각이나 현지 간부들에게 질책을 쏟아내는 것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이 있지만, 자신에게 쏟아질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도 있다"며 "북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내각에 대한 질타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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