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 이슬맺힌 파란꽃 피우는 끈기·신비의 토종 야생화 닭의장풀[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줄기가 여러 마디, 속이 비어 있고 잎이 대나무 잎과 비슷해 ‘죽절채
번식을 위한 생존본능이 가장 잘 반영된 꽃…꽃말은 ‘순간의 즐거움’
남색 꽃잎은 파란색 물감을 대신하는 염료로…꽃 색깔 탓에‘남화초’‘벽선화’
한나절 피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끈기의 꽃…영어명 ‘데이플라워(dayflower)’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아침에 핀 닭의장풀 꽃을 송두리째 잘라/물컵에 넣어주면, 야생은 참으로 거칠다/집안에서 꽃도 펴 수염 같은 뿌리들,/견디는 힘 또한 무지스럽다/들어올 여분도 없는데 벌레들은 어디서 오나/공기 껍질 같은 꽃잎을 바삭이며/빤히 쳐다본다는 착시에 빨려들 것 같다//그래도 꽃잎 속으로 한발 더 들어서면/피보나치의 논리를 따분하게 들어줘야 되듯/남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건 흘린다는 말,/당신에게 흘린다는 건/나의 많은 부분들 가지 쳐야 하듯/닭의장풀의 침묵과 당신에 관한 침묵들/단단한 세상인데 무얼 더 밝힐 수 있겠어//나의 생, 어느 중간쯤 닭의장풀 꽃 보며/에둘러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닭의장풀이나 나나 뿌리내린 시간들이/지극히 짧은, 그럼에도 당신의 영역에/들어가질 못해 안달이다/몹시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에둘러대는,//삶은 한 뼘씩 죽어가는 것들과/잠깐씩 이별하는 것이라 말해줘>
안정옥 시인이 삶의 철학을 담은 시 ‘닭의장풀’에서 설명한 대로 닭의장풀은 줄기를 물에 꽂으면 금세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 강한 토종 들풀이다. 중국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닭의장풀을 ‘꽃이 피는 대나무’라 부른 이유다.줄기가 여러 마디로 돼있고 속이 비어 있으며 잎이 대나무 잎과 비슷하게 생겨서 ‘죽절채’ 라 부르기도 한다.
닭의장풀은 대나무처럼 번식력이 대단하다.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은 닭의장풀을 두고 하는 말로 농부들을 성가시게 하는 잡초다. 닭의장풀의 강한 생명력 비결은 줄기에 있다. 옆으로 기는 재주가 있어 아무리 뽑고 뽑아도 줄기 밑 가는 실뿌리 하나만 있어도 영역을 넓혀 간다고 한다.
닭의장풀은 흔히 달개비라 불린다. 요즘은 북아메리카 원산인 귀화식물인 같은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자주달개비(‘양달개비’ 또는 ‘자주닭개비’라 불린다)가 널리 보급되면서 토종 달개비와 구분하기 위해 학명인 닭의장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닭의장풀은 외떡잎식물로 분질배유목 닭의장풀과 한해살이 초본이다. 우리나라 길가나 풀밭, 냇가의 습지에 흔히 볼 수 있는 토종 야생화다.
닭의장풀은 꽃의 생김이 아주 특이한 꽃이다.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들 정도로 빠져드는 매력덩어리다. 학계에서는 번식을 위한 생존본능이 가장 잘 반영된 꽃이라고 찬사를 늘어놓는다.닭의장풀은 고작 한나절 꽃을 피우기 위해 일년을 기다리는 끈기의 식물이다. 그 짧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며 긴 시간의 침묵을 견딘다. 그리고 가장 진하고 아름다운 하늘색을 담아낸다. 달개비의 꽃 모양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즐겁게 웃는 얼굴을 연상케 한다.
닭의장풀은 7~8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파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은 대표주자인 수레국화를 비롯, 델피니움, 블루데이지(청화국), 수국 등 300여종이 있지만 만 닭의장풀 어느 식물 못지않은 청초한 느낌의 아름다운 블루다 .짙푸른 남색 꽃잎은 파란색 물감을 대신하는 염료로도 쓰이는데 꽃 색깔 때문에 ‘남화초’‘벽선화’라 부르기도 한다.
닭의장풀은 새벽 이슬을 먹고 피는 듯, 아침이면 이슬을 달고 피는 꽃이다. 아침 설거지가 끝날 무렵에 꽃잎을 열고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서둘러 꽃잎을 닫는 ‘하루꽃’이다. 그래서 영어이름도 ‘데이플라워(dayflower)’이다. 일본에서는 ‘이슬이 맺힌 풀’이라는 청초한 이름을 사용한다.
닭의장풀은 ‘달개비’‘닭의 밑씻개’ 등 달리 부르는 이름이 무척 많다.닭의장풀 의미는 ‘닭장의 주변에서 흔히 자라는 풀’이란 뜻이다. 일각에서는 꽃과 잎 모양을 전체적으로 보면 수탉이 회를 치는 듯도 하고, 꽃잎 모양이 닭의 벼슬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계장초‘(鷄腸草)’, ‘가늘고 속이 비어 있는 줄기가 닭의 창자를 닮았다’라는 의미다. 닭장 주변에 흔히 자라서 붙여진 이름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다. 닭의장풀은 이래저래 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꽃모양 자체부터 신비롭다. 꽃잎은 모두 6개이지만 상대적으로 크고 둥근 파란색 꽃잎 2장이 우선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모양새다. 4장의 작고 하얀 꽃잎은 2장의 파란색 꽃잎을 받치듯 핀다. 수술은 헛수술과 수술, 암술로 이뤄져 있다. 맨위의 리본 모양의 3개의 헛수술과 가운데 리본 모양의 1개의 수술, 그리고 길게 뻗어나온 2개의 수술과 한개의 암술로 이뤄져 있다.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면 수술과 암술이 서로 뒤엉켜 말아올리고 꽃잎을 닫아버린다. 중매쟁이 곤충이 찾아오지 않아 수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긴 수술 2개는 암술을 끌어안고 ‘자가수분’을 하기도 한다. 꽃을 감싸고 있는 날개 포는 펼쳐 보았을 때 완벽한 하트 모양이다.
닭의 장풀은 우리나라 문헌에 최초로 기재된 이름은 ‘닭’과 ‘십갑이’의 합성어인 ‘ㄷ.ㄺ의 십가비’이다. 십가비(십갑이)는 ‘혓바닥’을 지칭하는 고어이다. 닭의 장풀 잎이 닭의 혓바닥을 닮았다는 주장도 있다. 닭의 장풀이 품은 열매 모습을 보면 여성의 성기에 관련된 상징 명사로 추정하는 고어가 더 설득력 있는 추론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람을 따라 다니며 사람이 사는 인가 주변에 사는 식물로, ‘괭이밥’과 함께 대표적인 ‘터주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들풀로 어린 줄기와 잎은 나물로 식용한다. 닭의장풀도 햇볕에서 잘 말려 달여 먹으면 쓸모가 많다. 부기가 가라앉고 이뇨작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꽃과 잎, 줄기를 모두 갈아서 즙을 내어 꾸준히 먹으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폐경기 여성들에게 성적 감각을 찾아주는 천연흥분제라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방에서는 ‘압척초(鴨척草)’라고 하며 전초를 약재로 사용했다.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고 특히 당뇨병, 부인병에 아주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한다.
줄기의 밑 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고 많은 가지가 갈라져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으로 바소꼴이며, 끝이 점점 뾰족해지고 얇은 종이 같은 막질로 된 잎이 줄기를 감싸듯이 ‘잎집’으로 돼 있다.
닭의장풀 꽃말은 ‘순간의 즐거움’이다. 따가운 햇살 속 아침 이슬 머금고 피어난 꽃이 피고 나서 한 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가 보다. 그러나 그 한순간을 위해 1년을 기다리며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피어났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걸까?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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