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불법, 모든 책을 불태우겠다”…마약보다 종이책을 더 혐오하는 세상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7]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모든 국민 독서 금지. 책은 불태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책이 숨겨져 있다면, 당연히 그 집도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독서가 금지된 세상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금서 명단에 오른 책은 100만권. 책 보유만으로도 이단으로 간주되며, 발각시 즉결처분.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레이 브래드버리의 장편소설 ‘화씨 451’의 설정입니다. 화씨 451도(섭씨 233도)는 종이책이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뜻합니다. 발견되면 즉시 책을 태워버리는 국가를 묘사한 소설입니다.
1953년 집필된 ‘화씨 451’은 사상의 자유에 관한 소설적 입문서이며, 2018년 영화로 제작돼 칸국제영화제에도 진출한 작품입니다.
또 이 책은, 지금 뜨겁게 논쟁중인, 정치적 올바름(PC주의)를 무려 70년 전에 예견하고 비판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떤 책일까요.
불을 꺼 생명을 구하는 존엄한 소방수가 아니라, 책을 불로 태워버리는 독특한 직업이었습니다.
몬태그는 10년간 방화작업에 1000회 이상 투입된 베테랑입니다. 누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신고를 받으면 즉시 방화차를 타고 출동해 ‘책 불법 소지자’를 제압한 뒤 책을 모아 불지르는 일을 합니다.
몬태그가 살아가는 나라는 ‘독서 금지’가 국법입니다. 책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코카인, 아편보다 더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됩니다. 꺼내기만 해도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기겁을 하고 도망가지요. 언제부터 책이 금지됐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방화수들이 책을 점화하려 하자, 성냥을 꺼낸 노인이 책과 함께 분신해버립니다. ‘여자는 경멸에 찬 눈초리로 손을 들고는 성냥개비를 난간에다 세차게 부볐다. 너무 늦었다.’(70쪽)
몬태그는 책 읽는 사람들이 정신이상자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지키려다 책과 함께 타죽는 모습을 처음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몬태그는 노인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삶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텅 비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책은 단지 종이의 집적(集積)이 아니라, 지식을 보존하는 그릇이라는 암묵적 합의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몬태그의 나라에서는, 멀쩡한 책을 태워 없애는 일이 국책 사업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방화청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수천 명의 방화수는 전국에 의무 설치된 방화서 소속 직원입니다.
이 나라에선 문자와 언어를 이용한 사유 활동이 전면 금지되어 있고 소설, 철학서, 역사서는 전부 금서입니다.
① “한때는 책이란 것도 이곳저곳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았지. 경제적인 부담이 적기도 하고. 세상은 아직 여러 모로 여유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갈수록 인구가 늘고, 대중의 규모도 커지고, 따라서 대중 매체도 변화하기 시작했네.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93쪽)
② “나도 젊었을 땐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싶어서 말이야. 그런데 책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거나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소설책에는 그저 상상으로 지어낸,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있을 뿐이야.” (104쪽)
비티 서장을 비롯한 리더들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다름 아닌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책은 인간에게 행복이 아닌 고통과 번민을 주기 때문이란 설명입니다.
책은 세상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비친 인간 자신의 실존은 대개 비참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세상에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 열광했습니다.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말이지요.
사람들은 집안 거실 벽면(3~4개 면)을 모두 텔레비전으로 연결한 뒤, 그곳에서 방출되는 영상에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사유는 곧 고통이니까요.
비티 서장은 이어서 또 말합니다.
③ “사람들에게 해석이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집어넣거나 속이 꽉 찼다고 느끼도록 ‘사실’들을 주입시켜야 돼. 새로 얻은 정보 때문에 ‘훌륭해졌다’고 느끼도록 말이야. 그리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행복해지는 거야. 사람들을 얽어매려고 철학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한 물건들을 주면 안 돼. 우울한 생각만 낳을 뿐이야.” (103쪽)
하지만 몬태그의 정신활동엔 이미 의심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몬태그는 결국 집의 환풍구에 숨겨뒀던 스무 권의 책을 발각 당합니다. 몬태그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비티 서장을 살해하고 도주합니다.
살인자 몬태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미국 안으로는 정치적 반대자를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정치 광풍(매카시즘)이 불었습니다. 또 미국 밖에서는 소련이 비공산주의 반대파를 탄압하던 때였습니다.
작가 브래드버리는 사상의 자유를 박살내고 있는 냉전 시대의 현실을 쳐다보면서, 오래 전 베를린에서 벌어졌던 ‘나치 독일의 책 소각 사건(Nazi Book Burning)’을 떠올립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치 소속 학생들이 자행한 책 불태우기 운동이었습니다.
횃불을 든 나치 학생들은 ‘독일적이지 않은’ 책을 불태웠습니다. 그들은 한 연구소에서 2만5000권의 책을 꺼내 그 자리에서 태워버립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막스 브로트 등의 책이 그 자리에서 찢어지고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나치 최고 선전가 요제프 괴벨스는 인류 최고 지성의 책을 “지적 오물”이라고 부르고 “유대 지식주의는 끝났다”면서 광분한 학생들이 책을 불태우는 행위를 독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을 옹호하던 사람들까지 죽어나갑니다. ‘화씨 451’에서 스스로 성냥 불을 켜고 운명을 선택한 노인처럼 말이지요.
광기의 악령이 불처럼 뜨거웠던 슬픈 시대였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70년 전에 우려했던 건 이른바 ‘소수자의 책 검열’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먼저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부고 기사를 읽어볼까요. 1920년생인 그가 2012년 6월 5일 사망한 다음날인 월스트리트저널 6일자 기사입니다.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이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단어나 문장을 반대하는 운동입니다. 무심코 사용한 표현이 누군가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으므로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이지요.
브래드버리는 ‘화씨 451’의 후반부 ‘마치는 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2년 전 한 여자대학의 한 학생이 브래드버리에게 “더 많은 여성캐릭터와 역할을 집어넣어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또 다른 편지에는“왜 작품 속 흑인들이 죄다 그렇게 비굴한가. 다시 쓸 생각이 없는가”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또 한 출판사는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을 교과서에 수록하면서 작가의 허락도 없이 단어를 마음대로 삭제해 버립니다.
브래드버리는 글에서 불쾌한 마음을 감추지 않습니다. 작가 브래드버리는 기록합니다.
“책을 불태우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불붙은 성냥개비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모든 소수자들, 침례교도, 유니타리안 교도(삼위 일체론에 반대하고 신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개신교도),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80대 노인들, 선불교도, 시오니스트,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도, 여성해방 운동가와 공화당원, 마타신(Mattachine·미국 초기 남성 동성애 운동 단체), 복음주의 교도 등등이 나름의 의지와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등유를 쏟아 부은 다음 불을 붙인다.” (260쪽)
그는 작가로서,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자들의 검열을 ‘예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반(反)PC주의자입니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작가였던 것이지요.
물론 브래드버리가 소수자의 권익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며, 모든 의미에서의 소수자를 나치와 동일시했다고 이해하는 건 분명한 비약입니다. 그 점은 조심스럽게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2012년 사망했을 때 모든 작가들이 그의 죽음에 고개 숙여 추념했습니다.
소설 거장 스티븐 킹은 “오늘 나는 희미해져가는 거인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의 작품은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남을 것”,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SF와 판타지, 상상의 세계에서 그는 불멸의 존재”라고 칭송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한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는 “청소년 때 나는 ‘화씨 451’을 집어삼키듯이 읽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스토리텔링 재능은 우리 문화를 재편성하고 세계를 확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책을 사볼 수 있는 세상, 몇 걸음만 걸어가면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공짜로 대출받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두려워 했던 세상’과 ‘갈망했던 세상’이 포개지고 겹쳐진 곳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대입니다.
그런데도 독자가 희귀종이 된 세상이다 보니 책은 이 시대에 그 미약한 힘마저 사라져가는 사물인 것만 같습니다. 소설에 적힌 다음 한 마디는, 그래서인지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요즘은 방화수들이 별로 필요치 않아요. 대중들 스스로가 책 읽는 것을 거의 포기했소.” (143쪽)
책이 꽂힌 책장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강력한 알리바이 중 하나가 책이니까요.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세상 속에 영혼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듯이, 한 줄씩 밑줄을 그으면서 자주 ‘책 바보’가 되곤 했던 저로서는, 이 책처럼 독서의 본령을 일깨우는 책 앞에서 겸허해집니다.
‘화씨 451’은 우리가 책을 손에 쥘 자유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해주는 명저입니다.
책장에 꽂아야 할 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책입니다.
※다음주에는 이스마일 카다레《피라미드》를 다룹니다. 남유럽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40년 독재를 비판한 소설로, 출간 즉시 금서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노벨문학상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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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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