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감독·배우들의 영화 도전기
[앵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8일, 북한 인권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룬 회의를 6 년 만에 열었습니다.
우리도 이 의제를 공동 발의할 정도로 북한 인권문제는 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떠올랐죠.
지금 우리 사회엔, 심각한 인권유린 상황을 견디다 못해 목숨 걸고 탈출한 탈북민 수가 3 만 4 천 명에 육박합니다.
북한에서 당했던 열악한 수감생활과 가혹한 고문, 또 처절한 탈북 과정에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담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고 있는 탈북민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있어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 현장을 이가흔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평범해 보이는 회색 벽돌 건물.
영화 <도토리>의 촬영 현장입니다.
실내엔 강렬한 선전 구호 아래, 단단하게 고정된 쇠창살이 보이는데요.
[허영철/탈북민 영화감독 :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북한 감옥."]
북한의 감옥을 지어 놓은 영화 세트장으로 크기와 구조 모두 그대로 재연했다고 합니다.
[허영철/영화감독 : "탈북자들이 많이 잡혀 들어왔을 때는 누워서 못 잤어요. 그냥 빼곡히 앉아서 잤어요. 최고 많을 때 이 안에 30명이 들어가요."]
한 달간 직접 제작했다는 이 감옥 세트장에선 오늘 중요한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요.
허영철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영화 속 장면으로 연출할 예정입니다.
[허영철/영화감독 :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북송 가게 됐어요. 그래서 1년 4개월 (수감되면서) 겨울엔 얼음 고문도 당해봤고 고문이란 고문은 별거 다 받았는데 오늘 그 일부를 재연할 거예요."]
영화 도토리는 실향민 1세대의 굴곡진 사연부터 탈북민들의 탈북 과정과 정착기 등을 담은 시대극입니다.
특히 영화에는 탈북민 출신의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과연 이들이 영화를 통해서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열악한 인권 상황에서 벗어나기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민들의 여정을 카메라는 쫓아갑니다.
인민군의 추격을 피해 산 넘고 물 건너 험난했던 탈북 행로가 실감나게 표현되는데요.
["(서라!) 뭐 하고 있는거야, 지금. 늦었어!"]
영화 제목 ‘도토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허영철/영화감독 : "(북한에서 도토리는) 먹을 게 없으니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식량으로 근데 남한은 뭐예요. 건강식으로 맛으로 그렇게 먹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도토리를 갖고 우리 70년 민족의 한을 그릴 수도 있고 남북한의 현 상황을 표현할 수 있겠구나..."]
2002년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온 허영철 감독은 정착 이후 촬영과 연출을 배워 2005년 단편 다큐 ‘뿌리’로 부산시네마영화제에서 창작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각본은 물론이고 연출과 촬영 편집까지 모든 것을 도맡았습니다.
사실적인 연출을 위해 소품 하나하나를 구하는 일에도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허영철/영화감독 : "모든 소품도 최대한은 북한에서 쓰는 오리지널 그대로 쓰려고 다 북한 거 갖고 온 거예요."]
영화에는 실제 탈북민들도 등장합니다.
전문 배우가 아니어서 연기가 낯설지만,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기 위해 작품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반가운 얼굴도 보이는데요.
[이순실/탈북민 : "안녕하세요. <남북의 창> 오래간만입니다."]
지난 1월, 통일로 미래로에 출연했던 떡집 사장님 이순실 씨.
이 영화에서 꽃제비 엄마 역할로 등장합니다.
[이순실/탈북민 : "저도 꽃제비 생활 10년 하다 왔어요. 8번 북송을 당했어요. 10년 동안 그래서 북한의 감방살이는 눈 감고도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우리가 악몽으로 엄청 그런 생활을 꿈을 꾸거든요."]
함경북도 출신으로 남한 방송을 몰래 봤다는 이유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지원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류지원/탈북민 배우 : "감옥 보면서도 아 그때 이 창살 앞에서 매 맞고 이런 생각 막 나는 거죠. 북한에 만행을 지금 만천하에 영화로 보여주는 거잖아요."]
본 촬영에 앞서 진행되는 리허설 시간.
["소대 차렷!"]
탈북민들은 함께 출연하는 전문 연기자들의 동작과 대사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하는 건 계급있는 사람이고, 귀 위에 (손을 올려야죠.)"]
배우들은 영화 촬영을 하면서 접한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미성/영화배우 :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험했던 거라서 그런지 너무 리얼하게 하길래 저도 거기에 함께 동화가 된 거예요."]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갑니다.
[허영철/영화감독 : "레디 액션!"]
지금 촬영이 한창 진행중인데요.
탈북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참담하고 암울한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붙잡혀 북한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처절하게 그려집니다.
포승줄에 묶여 발버둥을 쳐보지만, 총부리를 겨눈 인민군의 위세에 버티지 못하는 모습인데요.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탈북민의 절규가 가득합니다.
감옥 안에선 실제 자행됐다는 고문 장면이 이어집니다.
["여자들은 펌프 기합 천 개, 남자들은 2천 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강제로 음식을 먹이거나 무자비한 폭행도 보여집니다.
감옥 안과 밖에서 감정선을 끌어올린 배우들의 연기 열정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요.
[박학수/탈북민 : "북한은 다 이래요 이거보다 더 심해요. 여기 있는 배우들도 보고 가슴 아파 하는 거죠. 아까 아기 엄마가 (감옥) 들어갈 때 볼 때 진짜 눈물 나더라고."]
힘들게 한 씬 한 씬을 촬영하는 만큼 제작에 참여하는 탈북민들의 마음은 더욱더 간절합니다.
[최정호/탈북민 :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이런 행복도 같이 누리고 흰쌀에 돼지고기 밥을 맘껏 먹었으면 바람입니다."]
영화 ‘도토리’는 정해진 예산도 없습니다.
무보수로 촬영에 임하는 탈북민과 십시일반으로 각출하는 후원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방수련/탈북민 : "탈북하는 과정에서 아기 엄마가 실제 아기를 잃은 이런 상황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상황 보면서 참여하게 됐어요."]
탈북민과 북한의 인권 문제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미국 하원에서 영화가 완성이 되면 시사회를 열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다고 합니다.
[허영철/영화감독 : "탈북민 한 개인의 문제가 인권과 인류의 문제니까 국제적으로 관심 가져라. 우리가 이런 영화 찍으면 영화 속의 얘기인줄 알아요. 지금도 진행되는 현실이에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가 폭풍처럼 지나간 자리.
갑자기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북한 보위부 선전대 가수 출신 지원 씨가 오래간만에 솜씨를 발휘한 건데요.
순조롭게 촬영이 마무리되면 영화 도토리는 오는 12월에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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