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인 듯 동맹 아닌 한·미·일…한국도 동등한 사이 맞지?
[주간경향] 협력은 강화했지만, 북한의 도발 수위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배타적 협력도 아니라고 했지만, 중국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시작 전부터 ‘3국 협력의 새 지평’을 열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특히 정부는 “한·미·일 3국 안보·경제협력 역사는 8월 18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될 것”이라며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각국 정상들은 만남의 성과를 챙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동북아시아에서의 협력 강화가 자신의 외교적 성과물임을 확실히 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는 것과 이를 위한 군사·경제적 부담을 한·일과 나누게 됐다는 점이 부각된다. 쉽게 말해, 내년 대선 토론에서 미국의 세계경영, 중국 견제 등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할 말이 생겼다는 뜻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안보 협력을 통한 ‘전쟁 가능 국가’로의 전환 등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챙겼다. 특히 3국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한 추가 논의가 없었다는 점은 기시다 총리의 ‘외교적 승리’로 읽힌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무엇을 챙겼을까.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은 “3국 회의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력을 갖췄는데, 안보를 더 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며 “문서를 통해 세 나라가 상호 관계를 국제사회에 공식 천명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 매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미·일 정상과 만날 때마다 나왔던 말들과 유사한 맥락이다. “과정에 있다”는 식의 설명만으로는 정확히 무엇을 성과로 얻었는지 알기 어렵다. 정부가 ‘안보 강화’, ‘북한 억지’를 외교기조로 내세우는 만큼 해당 기조를 잣대로 성과를 가늠해봐야 한다.
우선 ‘핵 대응 능력’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핵 공격은 방어라는 개념이 없다. ‘핵 억지력’이란 말도 쓰지만, 실상은 ‘상호확증파괴’가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핵 공격을 받아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상호억지이론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상대방의 호의, 이성적 판단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과 유사하다. 국제사회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이 빈번하다. 이는 민주주의, 핵 등을 통한 상호억지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말하는 ‘핵 억지력’은 북한이 한국에 대해 핵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함과 동시에 한국이 핵 공격을 받을 시 미국이 즉각 ‘핵 보복’을 할 것이란 기대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대한 억지력이 강화됐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대북 적대시 정책이 명확해짐에 따라 국지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발생한 이명박 정권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다. “그때와 다르다. 압도적 화력으로 즉각 보복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북한이 실제 군사 도발을 감행했을 때 확인 가능한 주장이다. ‘즉각 보복’에 가려진 본질이 ‘사전 억지’ 실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론 역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실질적 성과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다. 뉴시스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에이스리서치·국민리서치그룹이 지난 8월 20~21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6명에게 한·미·일 정상회의가 경제·안보에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도움이 될 것’이 41.6%,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56.3%로 나타났다. ‘잘 모름’은 2.1%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윤석열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등의 미국 이익 중심 협상, 일본과의 과거사·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중국과의 갈등 문제 등을 떠안으며 한·미·일 협력 강화를 향해 내달렸다. 이를 ‘불가피한 선택’, ‘목표에 이르는 과정’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미·일이 얻어낸 성과들과 비교할 때 스스로 무능력을 드러낸 것과 같다. 적어도 ‘북한의 도발, 안보 위협이 감소했는가’,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제거됐는가’, ‘탈중국이 가능할 만큼 경제안보의 신기원을 열었는가’ 등에 대한 결과는 내놔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은 시간이 많지도 않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다.
미국을 사이에 둔 한·일, 무슨 사이라고 불러야 할까
지난 8월 18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The Spirit of Camp David: Joint Statement of Japa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을 결과물로 남겼다. 3국 협력의 비전과 이행 방안을 담은 내용을 공식 문서화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대통령실이 번역해 공개한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문서의 내용은 크게 실질적 변화와 기존 입장의 재확인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실질적 변화는 ‘연례적으로 3국 정상,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간 협의를 가진다’와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훈련 명칭을 부여해 다영역에서 정례 실시하고자 한다’ 등이다. 이는 문서에 포함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내용의 실질적 조치로 해석된다.
해당 내용에서 쟁점은 ‘한·미, 미·일 동맹과 별개로 존재하는 한·일 군사협력의 성격이 무엇이냐’다. 동맹은 공통의 적을 둔 국가 간의 정치·군사적 협력이다. 이에 따르면 한·일 간 협력은 양국 이름을 가리고 보면, 동맹에 가깝다. 문서에 언급된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조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실질운영은 동맹국 간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문서는 일본과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도록 하고자 하며, 증강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동맹은 아닌데 민감한 군사정보의 공유를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동맹도 아닌데 군사정보 공유 및 훈련을 하고, 일본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 상황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정부의 일본에 대한 수용적 태도는 한·미·일 3국 협력에서 한국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차라리 동맹인 것이 낫겠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동맹이라고 부르지만 않을 뿐 협력의 실질적 내용을 보면 누가 봐도 한·미·일 동맹”이라며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봉쇄할 연대세력을 얻었고, 일본은 대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있다가 한국이라는 방패가 생긴 셈인데 이를 통해 한국은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국 협력을 통해 한국의 안보상황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서에 담긴 기존 입장의 재확인은 주로 중국을 겨냥한다. 명시적 조치보단 촉구다. ‘남중국해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행동과 관련해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거나 ‘대만에 대한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에 관해서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거나 ‘모든 유엔 회원국이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기존 주장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다는 말이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 무엇을 얻었나
한국 입장에서 3국 협력의 효용은 북한이 협력에 위협을 느껴 실질적 태도 변화를 보일 때 체감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를 ‘도발억지’라고 표현한다. 억지는 ‘상대가 이성적 판단이 가능할 것’, ‘상호 파괴가 확실히 가능할 것’ 등의 성립 조건이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이미 해답을 내놨다. 지난 8월 22일 북한은 일본에 군사 정찰에 이용 가능한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틀 뒤 실제로 정찰위성을 발사했다.
지난 8월 23일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이번 3국 정상회담이) 새로운 나토(NATO)를 결성하는 것이 아니다”며 “공동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3개의 민주적인 국가가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국 간 협의가 ‘의무’이냐 ‘공약’이냐를 묻는 질문에 “(이 협력은) 어떤 무력 위협에 놓여 있을 때 즉각적인 트리거(trigger·도화선)는 아니다”며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문서라기보다는 정치적 합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한·미, 미·일 동맹과 별개로 3국 협력은 유사시 즉각 개입 등이 가능한 구조체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같은날 윤 대통령은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CP TANGO)를 찾아 “한·미·일 3각 협력 결정체 구조는 북한의 도발 위험을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어떻게 작동해 ‘기존’보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커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남북 대립 구조에서 억지력은 한국이 압도적 화력을 갖춘다고 생기지 않는다. 유사시 북한 정권이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수준이냐와 별개로 북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핵은 상호억지 이전에 상호파괴를 담보로 한다.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핵을 갖춘 북한이 구속력 없는 3국 협력에 위협을 느껴 도발을 멈추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윤 대통령의 “3국 협력으로 ‘북한’을 억지한다”는 말은 미·일이 “3국 협력으로 ‘중국’을 견제한다”로 발화 주체와 목적어를 바꿀 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한 이유’,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전 동북아에서 얻고자 한 성과’, ‘기시다 총리가 추구하는 보통 국가화와 지역패권’ 등을 모두 설명한다. 한국 정부만 3국 협력이 북한 견제용이라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미·일과의 협력 강화를 통한 대북억지를 강조해 왔다. 북한이 변했다는 증거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3국 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미·일에 양보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만 드러나고 있다. 마치 한국이 미·일이 재편하는 동북아 구조의 하부단위가 된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3국 협력 추진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갔다. 윤 대통령 차례다. 정치적 수사가 아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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