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한 김정은 북한 총리는 파리목숨?

김윤미 2023. 8. 2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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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사령탑으로 불리는 김덕훈 내각 총리를 콕 집어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 차미연 앵커 ▶

건달뱅이의 무책임, 틀려먹은 것들 같은 거친 표현을 동원해가며 총리와 내각 간부들을 몰아붙였습니다.

◀ 김필국 앵커 ▶

향후 대대적인 문책도 예고됐는데요.

김위원장이 돌연 내각 총리를 비난하고 나선 이유는 뭔지 김윤미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리포트 ▶

지난 2월 북한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의 축구 경기, 내각팀이 골을 넣자 김덕훈 내각 총리가 벌떡 일어나 환호합니다.

실점할 땐 아쉬워하며 주저앉기도 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손짓을 하면서 만류하는데도 혼자 서서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합니다.

2020년 8월, 59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내각 총리에 발탁된 김덕훈은 경제 분야 1인자의 행보를 걸어왔습니다.

김정은을 대신해 건설 산업 현장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김덕훈 현지시찰 보도/6월 27일] "검덕지구 살림집 건설장, 단천발전소 건설장을 비롯한 중요건설대상들을 돌아보면서‥"

각종 공개석상에서 권력 실세로 불리던 최룡해나 조용원보다 먼저 호명되기도 하면서 권력 2인자의 지위에 오른 듯한 모습도 연출됐습니다.

[조선중앙TV/2022년 9월]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김덕훈 동지, 조용원 동지‥"

하지만 각별한 듯 했던 김정은의 신임은 3년 만에 신랄한 비난으로 뒤바뀌었습니다.

평안남도 안석간석지 피해 복구 현장을 방문한 김위원장은 피해 발생과 대책 미비의 책임을 콕 집어 김덕훈에게 돌렸습니다.

[조선중앙TV/8월 22일]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

두 동강 난 제방 사이로 바닷물이 쉴새 없이 밀려들어 침수된 농경지, 팔을 걷어붙인 채 허벅지까지 물에 잠긴 논에 직접 들어간 김정은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내각 간부들을 질타했습니다.

[조선중앙TV/8월 22일] "내각 총리는 관조적인 태도로 현장을 한두 번 돌아보고 가서는 부총리를 보내는 것으로 그치고 현장에 나온 부총리라는 사람은 연유 공급원 노릇이나 했으며‥"

이어 간부들의 무책임과 무규율이 난무하게 된 건 내각 총리의 무맥한 사업태도와 비뚤어진 관점 때문이라며, 당 중앙위원회의 조직지도부와 규율조사부, 국가검열위원회 중앙검찰소 등에 관계자들을 처벌하라는 명령도 하달했습니다.

[조선중앙TV/8월 22일] "당 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 경종을 경종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김덕훈 총리는 물론 내각의 주요 간부들도 문책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 총장] "최고 지도자가 현지지도에서 당 간부들을 질책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상당 부분 상세하게 밝히면서 직접 거명하면서까지 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김정은의 질책 사흘 뒤 김덕훈은 내각 총리 명의로 태국 수상에 축전을 보냈습니다.

아직은 총리 자리를 보전하고 있지만 당분간 이전처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총리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활동은 계속 당분간 한다고 봐야겠죠. 이번에 김정은이 김덕훈 내각에 대해서 비판한 그 강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내각 총리를 그대로 두고 이제 갈 가능성은 좀 낮아 보이고요."

실세처럼 군림하며 잘 나가던 김덕훈이 갑자기 표적이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식량난 등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북한의 경제 상황을 지적합니다.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절반이나 지났는데, 목표달성이 어려워지면서 책임을 물을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김동엽/북한대학원대 교수] "김정은 입장에서 본인이 첫 번째 내세웠던 5개년 전략은 결국 실패했잖아요 본인이 불안한 거죠 사실은 한 번 더 실패할 수 없는, 코너에 몰렸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또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표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간부들의 기강을 잡으려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도 풀이됩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덕훈을 비난하고 좀 더 열심히 일하자는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내부적인 분위기 다잡기 이런 측면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북한의 내각은 작은 농장부터 각종 공장 등 거의 모든 경제분야를 총괄하고 책임이 막중하지만 실제 권한은 당과 군에 비해 미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 총장] "자력갱생도 한계가 있잖아요. '부족한 것은 해외에서 가져오세요 외무성하고 의논하세요' 이런 권한이 없단 말입니다. 책임은 많고 권한은 적다. 언제든지 파리목숨이다."

성과를 내기 힘든 구조 속에서 김덕훈의 위기가 어느 정도 예상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해 9월 북한 정권수립 기념 행사장에선 김정은 리설주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땅을 보며 딴 생각에 잠긴 듯한 김덕훈의 모습이 여과 없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철저한 검열을 거치는 북한 매체 환경을 고려할 때 이런 돌출 행동을 내보내는 건 일종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고영환/통일미래기획위원] "그런 장면들을 편집해서 내보내는 의도가 있을 거예요 사진 나온 걸 보면 '이 사람 조금 있으면 잘못되겠구나'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김정은의 그림자로도 불리는 핵심 실세 조용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태풍 카눈의 피해를 입은 침수 현장을 찾은 조용원은 젖은 양복바지에 맨발로 논둑길을 걸으며 김정은을 수행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멀끔한 김덕훈의 모습과 조용원을 동시에 노출하며, 간부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줬다는 겁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얼마만큼 충성해야 되는지 이런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 시스템이 북한에서는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김정은은 집권 초부터 내각의 경제책임경영을 강조해왔습니다.

[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2016년 5월] "내각 책임제, 내각 중심제의 요구대로 나라의 전반적 경제 사업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국제사회 제재와 코로나 19 확산으로 북한 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면서 내각의 책임은 더욱 강화돼 왔습니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순전히 북한 내부의 자원과 인력과 기술에 의존해 경제를 발전시킬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진 거죠. 그러면 경제를 누가 책임지느냐 결국 그건 내각이다."

전형적인 기술관료이자 경제 엘리트 출신인 김덕훈은 그런 과정에서 경제 사령탑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내리막을 맞았습니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북한은 다시 발벗고 나서라며 헌신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김윤미입니다.

김윤미 기자(yoong@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518256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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