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제 판소리 잇는 소리꾼 박성환 "과거 유산으로 멈추지 않길"

강애란 2023. 8. 2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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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널리 불리는 소리와 비교하면 아주 엉뚱해요. 그런데 듣고 나면 또 생각이 나죠. 다시 들어보면 안 들리던 부분이 들리고요."

판소리 갈래 중 가장 오래된 중고제(中古制)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소리꾼 박성환(54)은 지난 2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성환이 유성기 음반에나 남아있을 법한 중고제 판소리를 배우게 된 것은 '충청도 소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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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일 한국문화의집서 '적벽가' 완창…"담백하고 꿋꿋한 소리가 매력"
소리꾼 박성환 [박성환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요즘 널리 불리는 소리와 비교하면 아주 엉뚱해요. 그런데 듣고 나면 또 생각이 나죠. 다시 들어보면 안 들리던 부분이 들리고요."

판소리 갈래 중 가장 오래된 중고제(中古制)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소리꾼 박성환(54)은 지난 2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고제는 동편제, 서편제에 앞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정립된 소리다. 일제강점기까지 널리 유행했지만, 소리의 유행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아는 이들마저 드문 소리가 됐다.

박성환은 다음 달 2일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에서 중고제 '적벽가'를 완창한다. 2시간 30분가량의 무대다.

그는 '중고제 판소리의 거장' 이동백(1866∼1949)의 제자 정광수(1909∼2003) 명창을 조르다시피 해 중고제 '적벽가'를 배웠다. 스승 정광수에게 배운 부분은 초반에 해당하는 '삼고초려'부터 '박망파 전투'까지 40분 분량으로 후반부는 고음반의 이동백 소리를 중심으로 복원했다.

박성환이 유성기 음반에나 남아있을 법한 중고제 판소리를 배우게 된 것은 '충청도 소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논산이다.

그는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선배들한테 받은 첫 질문이 고향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충청도라고 하니 '충청도가 무슨 소리를 하냐?'고 되물었다"며 "이동백, 김창룡(1871~1935) 같은 대단한 중고제 명창들이 있었는데 불과 100년도 안 돼서 찬밥 취급을 받으니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제가 정말 없어졌는지 찾아보니, 정광수 선생님이 계셨다. 중고제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가니 '그건 옛날 소리고, 철 지난 소리라 써먹지 못한다'며 동편제 '수궁가'를 배우라고 하셨다"며 "당시 선생님이 90세였는데 '선생님이 오늘 가실지, 내일 가실지 모르지 않느냐. 그러면 맥이 끊어진다. 맛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가르쳐주셨다"고 덧붙였다.

소리꾼 박성환 [박성환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성환은 고제(古制)에 가까운 옛 소리인 중고제의 매력을 묻자 "밋밋하고, 담백하고, 기교가 덜하다. 감정 호소가 덜하니 꿋꿋하고, 남성적인 호방함이 있다"고 단숨에 답했다.

중고제의 내용과 형식은 조선 후기 지식층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살던 충청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유식한 문장이나 점잖고 절제된 창법이 대표적이다.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에 호소하려는 태도보다는 꿋꿋한 기상과 체면을 중시하고, 뽐내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호방하게 소리를 질러내는 것도 특징이다.

박성환은 "중고제 소리는 충청도의 느리고 유순한, 어찌 보면 두리뭉실하고 밋밋한 그런 말투와 흡사하다"며 "서편제가 선율을 꾸며내 노래를 아름답게 만든다면, 중고제는 말을 내뱉거나 책을 읽듯이 소리를 낸다. 슬픈 가락도 서편제는 서글픔을 끝까지 몰고 가지만, 중고제는 썰렁하리만큼 끝을 무심하게 마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편제가 현대에 오면서 점점 더 맛깔스럽게 소리를 낸다면, 중고제는 감각적인 멋보다는 속에 스며든 '속 멋'을 은근하게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박성환이 중고제 '적벽가' 완창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7번째다.

그는 "요즘 소리는 미학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고, 멋을 내거나 맛을 내는 창법이나 기법이 유사하다"며 "이렇게 비슷한 음악은 듣다 보면 질린다. 누가 더 잘 하나의 싸움에 불과하다. 중고제를 통해 많은 분이 판소리의 다른 세계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에도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는 사람이 키워내는 것이지 저절로 크지 않는다. 중고제가 과거 유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하나의 판소리 갈래로 사랑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환, 중고제 '적벽가' 완창 [박성환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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