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섬]'아기공룡 둘리'가 여수 낭도 왔었나

서충섭 기자 2023.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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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기암괴석, 쥐라기 공룡 발자국 즐비
탐방 데크·쉼터 필요…거친 파도 속 돌미역 특산품

[편집자주] 전남도가 2015년부터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가고 싶은 섬' 사업. 풍광, 생태, 역사, 문화자원이 풍부한 전남의 섬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섬 정주여건을 개선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뉴스1>이 가고 싶은 섬 사업을 통해 특색있고 매력적인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한 전남의 주요 섬을 직접 찾아 그곳만의 매력을 들춰봤다.

전남 여수 낭도 앞바다에서 섬 코디네이터 최길환씨가 바람에 붉은 천을 나부끼고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젊었을 때 여행 가이드를 하며 제주도를 200~300번은 갔는데, 저는 제주도보다 낭도가 백배는 좋아요. 바람이고 풍경이며 낭도가 주는 모든 것이 보물이고 매일 봐도 새로워요."

전남 여수에 속하지만 고흥방면을 통해 가는 길이 더 가까운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 교량이 설치돼 이제는 언제든 차를 타고 찾아갈 수 있는 섬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남성은 젊어서부터 분식집 영업에 가전제품 영업, 여행 가이드에 녹차 사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를 따라나선 몇 시간 동안 필자는 잠시 또 다른 세상을 만나야 했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그 옛날 한석규의 CF처럼 낭도의 속살은 정신이 꺼질 듯이 아득한 대자연의 날 것 그대로였다.

필자의 정신을 빼놓은 그는 '낭도의 셰르파' 최길환씨(65). 전라남도의 '섬 코디네이터' 자격증도 취득해 낭도를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그도 원래는 광주 서구 금호동에서 살다 7년 전 이곳에 눌러앉았다.

섬 코디네이터는 전라남도가 선정한 '가고 싶은 섬' 방문객들이 섬 관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섬 주민이 직접 섬의 생태와 관광자원을 활용해 방문객들에게 차별화된 관광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광 전문가다.

최씨도 장사금해수욕장의 반달형 푸른 해안이 병풍처럼 내려다보이는 그림같은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산타바 휴게소'라고 간판을 달아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남 여수 낭도 장사금 해수욕장./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살았으니 예순부터는 마음 닿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야 만 최씨.

지난해는 KBS '인간극장' 프로그램에 출연, 방송 내내 낭도 자랑만 쉬지 않고 늘어놓으며 아내의 푸념을 자아냈던 못 말리는 낭도사랑꾼이다.

스페인 말인가 싶은 '산타바'는 '산을 타보라'는 이 동네 말이란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집 앞 교차로는 '산타바 오거리', 해변은 '산타바 해변', 뒷산은 '산타바 언덕'이라고 불린단다.

그렇게 필자도 최씨를 따라 '산을 타보러' 낭도 둘레길 여정을 시작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번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낭도 둘레길 초입부터 전망대가 나타났다. '낭도'라고 적힌 등대형 전망대 옆으로 선 여우 캐릭터상, '여우를 닮은 섬 낭도'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전남 여수 낭도 둘레길의 전망대.낭도의 상징 캐릭터인 여우 캐릭터가 서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최씨가 한탄한다. "본래 낭도의 낭은 이리 낭(狼)이요. 섬 모양이 이리를 닮았다 해서 낭도인데 초기에 여우로 콘셉트가 잡혀서 이제는 바꾸지도 못하요."

괜한 구박을 받은 여우상 뒤편으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300여m 떨어진 사도(沙島)가 보인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우 박철민이 넉살맞게 연기한 '사도첨사 김완'의 사도(고흥)가 아닌, '모래섬'이라는 뜻의 여수 사도다.

사도는 추도 등 인근 7개의 섬들의 주도(主島)다. 음력 2월16일과 3월16일인 영등시가 되면 주변 바닷물이 빠지는 모세의 기적이 펼쳐져 낭도와 사도, 추도 일대의 섬들이 바닷길을 드러낸다.

사도 정면에 자리 잡은 사도관광센터 앞마당의 높이 5m 남짓의 흉폭한 티라노사우르스 조형물은 이 지역의 화려했던 과거사를 말해준다.

전남 여수 사도의 공룡 조형물./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낭도와 사도, 추도 일대에는 총 8곳의 공룡 화석지에서 3500개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특히 앞발을 들고 뒷발로만 걷는 조각류, 육식공룡인 수각류, 목이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 날아다니는 익룡 등 다양한 종의 발자국이 대거 발견돼 쥐라기와 백악기의 '핫플레이스'였음이 드러났다.

화려했던 과거의 역사는 이제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34호 '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및 퇴적층'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최씨를 따라 공룡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험난했다. 아직 탐방용 데크가 설치되지 않은 해안 암석지대를 직접 밟으며 30분간 나아갔다.

익숙한 최씨야 앞마당 산책을 나온 사슴처럼 사뿐사뿐 노닐었지만 초행인 필자는 돌다리도 두들기며 기었다.

전남 여수 낭도에서 최길환 섬 코디네이터가 벌집 모양의 타포니 형태 암석을 설명하고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그렇게 필자가 밟아나간 지형들도 특색 있었다. 암석의 약한 부분이 물과 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타포니(Tafoni) 형태의 암석이나, 용암이 튀어 물방울 모양을 하거나 아예 구멍이 숭 뚫린 구상풍화 암석 형태가 지천에 널렸다.

살아 있는 지질학습장이라는 학술적인 설명에 곁들여, 앉아서 볼일 보기 좋을 구멍이라는 최씨의 넉살 좋은 해석이 더해졌다.

전남 여수 낭도 해안에서 발견된 바위의 구멍이 바닷물과 바람에 풍화돼 뻥 뚫려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급기야 절벽을 방불케 하는 폭 30㎝가 될까 싶은 좁은 바위길을 지나자 널따란 바위 분지 일대에서 마침내 공룡 발자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남아 있는 공룡 발자국들은 전남과 경남 해안 지역 공룡 화석지는 물론 일본과 중국의 중생대와 백악기의 생태환경을 보여주는 1억년 넘게 잠자던 증거다.

발가락 길이만 30㎝는 될 것 같은, 세 갈래로 뻗은 발자국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본 티라노사우르스 등 수각류 공룡의 그것이었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수각류 공룡의 발자국은 완도 앞바다가 과거에는 육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흔적이었다.

전남 여수 낭도 바닷가에서 티라노사우르스 등 수각류 공룡 발자국을 찾아볼 수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최씨가 필자를 분주하게 부른다. "여기 아기공룡 둘리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해서 보니 겨우 손바닥만 한 작은 공룡의 발자국이 늘어서 있다.

특히 이 발자국은 직선으로 걸어간 보(步) 행렬의 연속성이 매우 좋아 희귀한 흔적이었다.

1억년 전 딱딱한 암석이 아닌 진흙이었을 이 땅을 어미도 없이 혼자 푹푹 밟으며 걸어간 아기공룡이 무슨 일을 겪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전남 여수 낭도 해안에서 볼 수 있는 공룡 발자국. 손바닥만한 크기의 발자국이라 '아기공룡 발자국'으로 부른다.2023.8.24./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땅바닥의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절벽의 각양각색 기암괴석도 낭도의 볼거리다.

특히 암석이 세로로 갈라지는 절리와, 가로로 갈라지는 층리가 맞물리면서 극히 희귀한 확률로 직사각형 문 모양의 암석 형태가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선녀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100여m에 달하는 널찍한 바위지대들은 선녀가 와서 놀았다고 해 천선대, 신선이 왔다고 해 신선대라고 이름 붙었다. 최씨는 숱하게 이곳에 와 바위에 드러누워 자연이 선사하는 풍류를 즐기며 시를 썼다고 했다.

"신선대 바닥에 누워 커다란 하늘을 안으려고 하니, 하늘은 내게 안을 만큼만 내어주며 더 채우려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신선대에 드러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최씨가 지은 시다.

여기에 무등산에서 볼 수 있는 용암이 육각형태로 굳은 주상절리 암석군과, 무수한 세월을 파도가 치면서 생긴 깊은 동굴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쌍용굴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거친 파도가 치는 가운데서도 굵직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돌미역은 얇은 종잇장같은 일반 미역과 다른 낭도의 특산품으로 인기를 끈다고 한다.

전남 여수 낭도 해안가의 선녀문. 문처럼 바위가 직사각형으로 갈라졌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이렇게 장사금해수욕장부터 포토존, 산타바 해변을 지나 남포 등대, 공룡발자국, 천선대, 신선대, 쌍용굴에 이르는 7.2㎞의 낭도둘레길 1코스 중 해안가 코스를 2시간여 만에 돌아봤다.

무더위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언덕을 오르며 숨이 차올랐지만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솟구쳤다.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자신을 잊고 대자연의 산물을 잔뜩 목도하며 인간의 존재를 잠시 잊는 순간은 혼잡한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쾌락이었다.

최씨가 낭도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벌써 낭도의 소문을 듣고 온 외지사람들이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수십대를 대동해 찾아온단다.

덕분에 낭도의 어르신들도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둘레길 관리에 동참하며 모처럼 관심을 받은 섬을 가꾸고 있다.

특히 일부 험준한 탐방로를 고려할 때 낭도의 매력을 100% 속속들이 느끼려면 섬 코디네이터를 대동하는 편이 바람직했다.

전남 여수 낭도 해안가의 쌍용문. 파도가 무수히 들이치며 깊은 동굴 두개가 생겼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탐방객들이 손쉽게 해안가의 기암괴석과 공룡발자국 흔적을 찾기 위해서도 탐방용 데크와 쉼터 설치 필요성도 느껴졌다.

조만간 낭도와 사도는 인도교로 연결돼 지역 관광에 훨씬 탄력을 받을 예정이다.

여수시는 2021년 낭도와 사도를 잇는 730m의 인도교의 용역조사를 실시하고, 전남도도 관련 사업비 반영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게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를 앞두고 낭도는 매력을 발산할 준비를 착착 해나가고 있었다.

아직 간판 하나 없이 한적한 해변을 매일 아침 눈에 담고, 반경 수백 미터에 방해하는 사람 없이 홀로 파도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숨겨진 보물섬 낭도를 두고 돌아오는 발길은 그래서 아쉬웠다.

zorba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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