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人](20) "그들은 어떻게 하면 죽을까 생각한다"

최현석 2023.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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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탈북민 출신 김정애(52) 인천 옥토밭교회 목사는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제북송을 앞둔 중국내 탈북민들이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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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中대사관 앞 북송 반대 시위, 탈북민 출신 김정애 목사…"중국내 탈북민 불안과 공포로 밤잠 설칠 것"
"인도적 지원보다 탈북민 송금이 北 가족들 먹여 살려"
김정애 인천 옥토밭교회 목사 [촬영 최현석]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지금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탈북민 출신 김정애(52) 인천 옥토밭교회 목사는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제북송을 앞둔 중국내 탈북민들이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목사는 "목숨 걸고 탈북한 2천600명이 북송 후 억울하고 잔인하게 죽임당할 수 있고 탈북민의 10배에 달하는 가족과 친척까지 처벌을 받는다"며 "각국과 유엔이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얘기해 북송을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4년 6월 강제 북송된 적 있는 그는 "당시 고문과 영양실조 등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김 목사는 매주 월요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탈북민 북송 반대 시위에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등과 함께 참가하고 있다.

다음은 문답.

탈북민 북송 반대 시위 참가한 김정애 목사 [유튜브 채널 크리스천투데이 캡처]

-- 언제 탈북했나.

▲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았다. 내 나라가 제일 좋고 모든 세상이 북한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남편이 사망했다. 길에 누워있는 사람은 이미 죽었고 앉아있는 사람은 죽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구더기가 들끓는 시신을 여러 겹으로 쌓아 달구지로 옮긴 뒤 구덩이에 묻었다. 어느 순간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걱정에 1998년 6월 탈북했다.

-- 중국 생활은 어땠나.

▲ 인신매매를 통해 중국 지린(吉林)성 왕칭(汪淸)현 톈차오링(天橋嶺)진의 시골 남성과 강제 혼인했다. 중국에서 본 한국 영화에서 여성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 없는 사람과 살고 있는 나 자신과 비교가 됐다. 한국 부잣집에서 청소라도 해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한국에 오려다가 중국 공안에 포섭당한 브로커가 신고하는 바람에 강제 북송됐다.

-- 북송 후 처벌받았나.

▲ 탈북자 중 한국행(기도자)으로 찍혀 4년형 판결을 받았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투먼(圖們)을 거쳐 북한 온성보위부로 이송돼 약 40일 동안 맞았다. 중국에서 들은 대로 몸에 돈을 숨겼다가 알몸 신체검사 때 들켜서 심하게 구타당했다. 상한 옥수숫가루로 된 죽물을 먹고 장염이 온 데다 콜레라까지 감염돼 사흘간 설사를 하다 쓰러졌다. 몸무게가 28kg도 안 되는 등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깨어났다. 청진 집결소로 이동 후 포항구역 건설 현장에 불려 가 대형 블록을 3층 높이 건물까지 걸어서 옮기는 강제노동을 했다. 5명이 앉으면 꽉 차는 2평 남짓 공간에 약 30명이 겹쳐서 자야 했다.

-- 어떻게 풀려났나.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공주' 같이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던 할머니를 보고 비결을 물어보니 소원을 말한 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다. 시킨 대로 사죄와 감사, 소원 기도를 했는데 며칠 후 우연히 동생이 찾아왔다. 동생이 뇌물을 준 덕분에 한 달 만에 풀려났다.

-- 언제 재탈북했나.

▲ 2005년 2월 재탈북하며 잡히면 감옥에서 고통당하느니 죽겠다는 결심으로 극약 2봉지를 쥐고 두만강을 건넜다. 무사히 도강하면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기도했는데 국경 경비의 도움 없이 중국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장당 1위안(약 182원)을 준다는 탈북민 선교사의 말에 성경책을 필사하다가 출애굽 전 10가지 재앙이 내 경험과 너무 비슷해 통곡했다. 이후 지하교회를 다녔다.

김정애 인천 옥토밭교회 목사 [촬영 최현석]

-- 한국행 이유는.

▲ 저를 지원한 탈북민 선교사가 2009년 강제 북송당하는 등 탈북민 체포 바람이 불자 안전하게 예수님 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10월 한국에 입국했다. 이듬해 백석대 신학과에 입학해 지난해 목사 안수도 받았다.

-- 옥토밭 교회는 어떤 곳인가.

▲ 2년 전 내가 인천에 만든 개척교회다. 신도는 탈북민과 가족 20여명이다. 북한에서 고통받는 주민을 복음으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 탈북민 북송 반대 시위에 참여 중인데.

▲ 제가 경험해 봤기 때문에 북송을 반드시 막으려고 한다. 온성보위부에서 수십분간 이어진 고문에 비명을 지르다 죽어 나가는 경우를 봤다. 청진집결소에서도 복도에 쓰러져 죽어 있는 이들을 목격했다. 중국에선 신분증 없이도 이동이 가능하고 주석 욕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은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잔인한 곳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는 죽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 탈북민 북송을 막을 방법은.

▲ 다음 달 하순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 북송 저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유엔 난민보호기구 등이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면 제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평화나 인권 관련 상을 주고서라도 세상에 좋은 일 하도록 해야 한다.

김정애 인천 옥토밭교회 목사 [촬영 최현석]

-- 북한 내 지하교회 활동은.

▲ 신앙심이 깊은 분들은 중국에서 북한으로 다시 들어간다. 동생도 2008년 중국 내 미션홈에서 6개월간 선교사 훈련을 받은 뒤 북한에 파송돼 활동했다. 간첩 누명을 쓰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고 들었다. 최근에도 평안남도에서 예배드리던 교인들이 잡혀갔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예수를 안 믿겠다고 말하면 유기징역형을 준다고 회유하지만, 신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무기징역형인 정치범수용소로 간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지하교인이 20만명이 안 됐는데 현재는 40만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들었다.

-- 정부에 바라는 점은.

▲ 북한 주민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북한 당국을 통한) 인도주의 방식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당국은 쓰고 남은 지원 물자를 미사일 개발에 활용해 한국인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 주민에게는 전달이 안 돼 고통의 시간을 연장할 뿐이다. 오히려 탈북민이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돈은 목숨 걸고 중개하는 북한 주민의 수수료를 빼고 다 들어가 가족을 살릴 수 있다.

harri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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