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요정의 기묘한 모험] 포자가 가루처럼 터지는 '말불버섯류'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2023.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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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불버섯 (왼쪽- 숲속의 부엽토 또는 낙엽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복균류 버섯으로 어릴 때는 식용이 가능한 버섯이다)과 댕구알버섯 (오른쪽-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버섯 중 하나. 우리나라에서 귀한 취급을 받는 것과 달리 외국에는 시장에서 팔릴 정도로 흔하게 발생한다. 식용 버섯이며 스테이크처럼 구워서 먹기도 한다). 박상영 제공

● 둥글둥글 축구공 같은 말불버섯

작년 여름엔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 갔어요.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피해가 남았지요. 그런데 거센 비바람이 숲을 강타하고 난 뒤 많은 버섯이 피어올랐습니다. 태풍은 버섯에게 필요한 물과 온도 등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죠.

태풍이 한바탕 휩쓴 뒤 서울의 한 활엽수 숲에서 거대하고 둥근 흰색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멀리서 얼핏 봐도 제 머리만 한 크기를 하고 있었기에 누가 축구공을 버리고 갔나 생각했어요. 가까이 다가가니 흰색 구체는 여러 개 있었습니다.

주먹만 한 크기부터 큰 건 볼링공과 비슷할 정도로 크기가 다양했죠. 버섯일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큰 버섯은 처음이라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버섯이라는 확신이 선뜻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중 축구공만 한 흰색 구체를 들어 올렸어요. 생각보다 가벼웠지요. 땅과 닿아 있었던 부분엔 흙과 낙엽들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어 그것들을 살살 털어내니 자그마한 뿌리가 드러났습니다. 그제야 이것이 버섯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버섯의 정체는 ‘댕구알버섯’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잘 안 보이던 희귀한 버섯이었는데 태풍으로 토양이 뒤섞이며 버섯의 포자가 잘 퍼져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것이죠. 요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과수원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댕구알버섯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곤 합니다.

애기방귀버섯 방귀버섯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를 갖고 있는 버섯. 박상영 제공

댕구알버섯처럼 둥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버섯을 ‘복균류’, 혹은 ‘말불버섯류’라고 합니다. 말불버섯류는 종에 따라 버섯의 몸통인 대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없으며, 둥그스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말불버섯류의 어린 개체를 반으로 갈라보면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운 흰색 조직을 볼 수 있는데 이 조직들은 나중에 올리브색 분말 형태를 띠는 포자로 변하죠.

말불버섯류는 성장하며 버섯 표면에 구멍이 뚫려요. 이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버섯 표면을 때리면 그 반동으로 내부에 있는 포자가 표면의 구멍 밖으로 터져 나와요. 말불버섯류는 썩은 나뭇잎이 가득한 토양인 부엽토를 좋아하는 부생균에 속합니다. 그래서 숲속 바닥이나 잔디밭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황토색어리알버섯(왼쪽- 공원의 듬성듬성한 풀밭 또는 이끼에서 자주 보이는 버섯. 섭취시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는 독버섯이다)과 먼지버섯(오른쪽 - 습한 환경이 되어 포자주머니를 밖으로 드러내고 있는 먼지버섯. 방귀버섯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진 관계다). 박상영 제공

●별 모양의 겉옷 입은 방귀버섯과 먼지버섯

방귀버섯과 먼지버섯도 내부의 속살이 가루 형태로 변하는 말불버섯류에 속해요. 그러나 앞 장의 버섯과는 다르게 방귀버섯과 먼지버섯에는 외피가 따로 있어 마치 도토리 깍지나 별 모양을 하고 있어요.

방귀버섯은 외피가 뭉툭하게 갈라지고 흰색을 띠지만 먼지버섯은 외피가 좀 더 날카롭게 갈라지고 검은색 외피에 흰색 껍질이 갈라져 있는 듯한 모습이죠. 먼지버섯의 외피는 독특한 기능도 하는데 덥고 건조할 때는 포자 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오므려져 있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면 다시 벌어지며 포자 주머니를 밖으로 드러냅니다.

방귀버섯과 먼지버섯은 겉으로 매우 유사하게 생겼지만 사실 먼 친척 관계입니다. 방귀버섯은 방귀버섯목에 속하고 먼지버섯은 그물버섯목에 속하거든요. 그래서 둘은 생태적으로도 크게 차이가 나요.

먼지버섯은 나무와 공생하는 공생균이지만 방귀버섯은 부엽토를 분해하며 자라는 부생균이기 때문입니다. 방귀버섯과 먼지버섯은 서로 다른 종이지만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현상인 ‘수렴진화’의 대표적인 예죠.

먼지버섯과 방귀버섯, 댕구알버섯과 말불버섯은 성숙하고 나면 하얀 속살이 포자가 되며 올리브색 가루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버섯들의 포자 가루는 역사적으로 요긴하게 쓰였어요. 이들의 포자는 지혈에 효과가 있어 중국과 중앙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지혈제로 쓰였는데 특히 댕구알버섯은 유럽에서 전쟁 전에 많이 채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요.

저는 가끔 길을 걷다가 성숙한 복균류를 발견하면 괜히 쿡쿡 건드리며 포자를 터뜨리곤 합니다. 푹푹 퍼져 나오는 올리브색 포자들이 수놓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다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버섯도 손쉽게 포자를 퍼뜨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8월 15일호,  [버섯요정의 기묘한 모험] 포자가 가루처럼 터진다! 말불버섯류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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