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분재를 하지 않는 이유 [반려인의 오후]

안희제 2023. 8. 2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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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분재였다.

옆 가게를 둘러보다가 예쁜 식물들에, 그리고 식물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끌려 결국 첫 분재를 들이게 되었다.

그저 분재를 사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식물과 화분, 그리고 흙이 생긴 우리는 집에서 분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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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 사랑, 망각, 보살핌, 방치의 흔적.ⓒ안희제 제공

시작은 분재였다. 집에서 대형마트를 오가는 길목에 서오릉이 있고 거기에는 화훼단지가 있다. 식물로 가득한, 적절한 습도의 비닐하우스가 길가에 줄지어 있다. 식물을 기르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식물에 빠진 건 그곳의 한 가게에 들어갔다가 분재들을 보고서였다.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도 완전한 나무의 모습을 한 식물들이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옆 가게를 둘러보다가 예쁜 식물들에, 그리고 식물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끌려 결국 첫 분재를 들이게 되었다.

그저 분재를 사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분재를 사면 만들고 싶어진다. 사장님은 분재 화분의 흙을 3층으로 구분했다. 가장 밑에는 배수가 잘되는 흙을, 중간에는 뿌리가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흙을, 그리고 맨 위에는 깔끔하게 화분을 마무리할 수 있는 흙을 썼다. 사장님은 각각 흙을 한 봉지씩 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식물과 화분, 그리고 흙이 생긴 우리는 집에서 분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분재가 되지 않은 식물들을 사서 분재로 만들었다. 원래 화분에서 뿌리를 뽑고, 물로 깨끗이 씻고, 새 화분 크기에 맞게 뿌리를 잘라준다. 화분에 배수가 잘되는 흙을 깔고 뿌리를 올린다. 그런 다음 뿌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흙으로 뿌리를 덮는다. 나는 약간 굵은 나무젓가락 하나로 흙을 군데군데 찔러주었다. 흙과 뿌리를 더 촘촘히 결합해서 그 사이의 공기를 빼주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위에 흙을 덮고 물을 흠뻑 적셔준다. 그리고 (반)음지에서 뿌리가 안정화될 수 있도록 해준다.

몇 달 동안 나는 분재에 푹 빠져 살았다. 아주 작은 편백인 청짜보, 향나무, 피라칸사스(혹은 피라칸타), 그리고 이제는 하나하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식물을 분재로 만들었다. 식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너무 많이 길렀고, 이제는 없다는 뜻. 동물이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집에서 기른 식물은 화분을 남기는 걸까. 베란다에는 텅 빈 화분들이 쌓여 있다. 모종을 살 때 받은 얇은 플라스틱 화분부터, 마음을 많이 쓴 식물들이 집으로 삼았던 도자기 화분들까지.

고백하건대, 초기에 만든 분재 중 남아 있는 것은 몇 없다. 나와 아버지는 서오릉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나 식물 판매 사이트에서 식물을 사기도 했는데, 튼튼하고 잘 자란다는 피라칸사스도 지금은 없다. 청짜보도 하나 빼고는 어느새 사라졌다. 베란다의 빈 화분들은 한때 매일 아침 보살폈으나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식물들의 흔적이다. 사랑, 망각, 보살핌, 방치의 흔적.

식물을 그냥 기르다가 실패하면 상황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분재가 죽으면 내 책임이 더 커진다. 분재는 사람에 대한 식물의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먹고 남은 씨앗을 기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 미감에 맞게 식물을 기르기보다, 식물들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좋아졌다. 매일 열과 성을 다해서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반드시 식물을 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비어 있는 분재 화분들을 채우지 않는다고 식물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뜻은 아니리라.

안희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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