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항 대하 축제가 전부? 홍성에는 노을과 섬, 시가 있습니다 [ESC]

박미향 2023. 8.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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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박미향의 요즘 어디가]박미향의 요즘 어디 가 충남 홍성
남당항 해양분수공원 ‘상전벽해’
갯벌 닿은 전망대, 낙조 한눈에
배로 15분, 죽도엔 편한 둘레길
한용운 생가 뒤로 ‘민족시비공원’
충남 홍성 남당항 해변에서 갯벌로 이어지는 ‘남당 노을 전망대’. 홍성군청 제공

홍성은 억울하다. “홍성으로 여행가자”라고 말하면 열에 여덟은 “강원도 좋지요, 한우도 먹어봅시다”라는 답을 한다. 충남 홍성을 강원도 홍천이나 횡성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홍성군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게 홍성군에는 이렇다 할 여행지가 없었다. 올해로 28회 맞는 ‘가을 남당항 대하 축제’ 정도가 인지도 있는 행사였다.

하지만 대하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은 새우로 한끼 때우고 금세 홍성을 떠났다. ‘놀 거리’ ‘즐길 거리’가 부족해서였다. 하지만 최근 홍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다로 쭉 뻗은 전망대가 생겼는가 하면 하늘 높이 올라간 타워도 내년 1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남당항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홍성의 숨겨진 보물 같은 여행지도 차츰 알려지고 있다.

음악분수, 트릭아트, 네트 어드벤처

지난 6월29일, 비가 쏟아지는 남당항에 도착했다. 맑던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화창한 날에만 여행하라는 법은 없다. 여행지의 매력이 아닌 여행 준비 단계만 기술한 책도 있지 않은가.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은 그의 저서 ‘여행준비의 기술’을 통해 여행이란 콘텐츠에 접근하는 다양한 통로와 재미를 소개한 바 있다.

남당항은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다른 곳’이 돼 있었다. 과거 대하 축제 때마다 뿌연 흙바람 일으키던 남당항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바다 매립지에 5만5000㎡ 규모의 광장이 조성됐다. 잘 정비된 광장은 바닷바람을 친구 삼아 세련미를 뽐내고 있었다. 이름도 생겼다. ‘남당항 해양분수공원’. 공원에는 물놀이형 음악분수뿐만 아니라 트릭아트 존, 네트 어드벤처 등의 체험 시설도 완비돼 있었다. 총 길이 170㎝, 폭 3~9m 규모의 트릭아트 존은 지난 4월께 완공됐다.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아슬아슬한 계곡의 출렁다리를 지나가는 듯한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엠제트 세대가 환호하는 장소다. 트릭아트란 말 그대로 ‘속이는 미술’이다. 교묘하게 착시현상이 일어나도록 구조물을 세워 여행객들에게 재미를 준다. ‘대형 대하’, ‘바다거북과 바다여행’, ‘상어의 위협’, ‘대형 문어의 습격’ 등 12개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거대한 어망처럼 보이는 네트 어드벤처는 총면적 731㎡ 규모의 땅에 기둥 여러 개를 세우고 그사이에 그물을 설치한 레포츠 시설이다. 그물 위로 팡팡 뛰어오르며 놀 수 있다. 2층 구조로 방만 6개다. 최대 수용인원이 125명이라고 한다. 6600㎡ 규모의 물놀이형 음악분수도 볼거리다. 광장을 메우는 멜로디에 따라 물이 솟구친다.

남당항 공원에 설치된 트릭아트 존. 홍성군청 제공
내년 1월 개장을 앞두고 있는 홍성스카이타워. 홍성군청 제공

광장에서 북쪽으로 1㎞ 남짓 바닷길을 따라 걸어가면 ‘남당 노을 전망대’가 나타난다. 해변에서 시작된 다리 모양의 전망대는 갯벌까지 쭉 뻗어있다. 여기에서 보는 서해안 노을은 일품이다. 전망대를 받치고 있는 해변은 4년 전 모래를 부어 만든 인공 백사장이다. 이 전망대에서 4㎞ 정도 떨어져 있는 속동전망대도 낙조 보기에 더없이 좋은 명소다. 내년 1월에는 인근에 높이 65m의 홍성스카이타워도 개장할 예정이다.

눈치 백단 백구가 안내하는 죽도

평일 하루 5회, 휴일엔 6회 남당항과 죽도를 오가는 홍주호. 박미향 기자

지난 6월30일 오후 1시. 전날부터 흩뿌린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이 틈을 이용해 운 좋게 죽도행 배에 오른 이들이 있었다. 대산농촌재단이 비용의 50%를 제공하는 ‘가족사랑농촌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초등학생 자녀를 대동한 30~40대들이었다. 이 여행에 참가한 이미영(42)씨는 “이런 섬이 있는 줄 몰랐다. 아이가 농촌 체험도 하고 섬도 가니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당항에서 배로 15분 거리. 평일엔 5회, 주말과 휴일엔 6회 운행하는 배편이 있다.

죽도는 이씨의 말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천수만 앞바다의 보물 같은 섬이다. 홍성군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기에 더 대접받는 곳이기도 하다. 죽도 여행의 매력은 조망쉼터 3곳을 중심으로 자박자박 걸을 수 있게 조성된 둘레길에 있다. 대략 2시간 걸린다. 더구나 길은 나무 데크와 폭신한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노인이나 초등학생도 걷기 편하다. 이 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자동차가 다니기 어렵다는 점. 마을길이 좁아서다. 그만큼 청정지역이라는 소리다.

하늘에서 본 죽도 전경. 홍성군청 제공
걷기 좋게 길이 난 죽도. 박미향 기자

배에 내려 제2조망쉼터(동바지 조망쉼터)를 향해 나무 계단을 오르자 백구 한 마리가 쫓아왔다. 양희은은 최근 출간한 책 ‘그럴 수 있어’에 자신의 노래 중에 ‘백구’를 가장 아낀다고 밝혔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어느 해에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 가엾은 우리 백구는/ 그만 쓰러져 버렸지’. 잔잔한 멜로디에 구슬픈 가사는 심금을 울린다. 양희은의 백구와 달리 죽도 백구는 활발하고 눈치가 백단이다. 잠깐이라도 발걸음을 멈추면 딴청을 하며 여행객을 훔쳐본다. 앞서 걸으면 가야 할 방향도 알려준다. 안 따라오면 삐치기도 했다. 짐승이 아니라 개의 탈을 쓴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영특했다. 백구가 안내한 제2조망쉼터 숲길 양옆에는 아름드리 대나무가 서 있었다. 죽도가 죽도인 이유다. 하지만 이곳 대나무는 조금 다르다. 부산 ‘아홉산숲’ 대나무의 반절 정도 되는 굵기였다. 가는 대나무 사이로 서해 눅진한 바람이 끼어들어 울었다. 제3조망쉼터(옹팡섬 조망쉼터)에 오르자 멀리 물이 빠진 자리에 죽도에 딸린 섬이 보였다. 그 위로 힘차게 나는 새들은 한 폭의 명화였다.

죽도에 도착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섬의 명물 백구. 여행객들을 따라다니면서 안내를 해 인기가 많다. 박미향 기자
죽도 마을에 있는 집 옥상에 설치된 조형물. 박미향 기자

제1조망쉼터(담깨미 조망쉼터)에 오르면 죽도에 희한하게도 빽빽하게 조성된 소나무 숲을 발견한다. 해풍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긴 세월 버틴 소나무에서 삶의 지혜를 엿본다. ‘어떤 고난에도 버티고 버텨내는 것만이, 그래서 시간의 힘을 얻은 자만이 행복의 문고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이다.

선착장에 도착해 섬을 떠날 채비를 하자 백구가 또 나타났다.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여행객을 바라보는 시선이 맹랑하다. 여운이 오래 가는 백구의 작별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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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한용운·이응노의 고향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 장군과 ‘님의 침묵’의 만해 한용운(1879~1944) 시인,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홍성이 출생지다. 이들을 기리는 박물관이 조성된 지가 꽤 오래전이지만, 죽도처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홍성의 보석 같은 여행지다.

홍성군 홍북읍에는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 있다. 1960년대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세계적인 예술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작품에 담았던 이 화백이 17살까지 살았던 곳이 홍북읍 홍천마을이다. 2011년 홍성군은 그의 생가 터에 그가 남긴 스케치와 글을 참고해 박물관과 야외 전시 공간, 연꽃이 화려하게 핀 공원 등을 조성했다. 박물관에 걸린 1984년 작 ‘군상(인간시리즈)’, ‘문자 추상’(1978년 작), 이 화백이 아꼈던 손녀 이경인의 초상화(1971년 작) 등을 통해 대가의 거대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지난 6월16일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응노 화백의 ‘금강산 보덕굴’을 이곳에 기증했다. 이 작품은 가로 170.8㎝, 세로 119㎝ 크기로 금강산 만폭동과 절 보덕굴 풍경이 담긴 명작이다.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앞에 조성된 연꽃 공원. 박미향 기자
한용운 생가 뒤 야산에 조성된 ‘민족시비공원’. 박미향 기자

전시실 중 하나인 기획전시실 창문이 희한한 위치에 있었다. 천장 바로 아래 작은 크기로 뚫려 있었다. 요상하다는 생각에 특별전 ‘어린이 전시 옥중일기’의 기획자 서상림씨에게 물었다. 그는 “이응노 선생이 옥에 갇혀 있었을 때를 상징한 것이다. 감옥 창이 그런 모양이 아니었겠는가”라고 말했다. 만나기 어려운 화백의 그림을 한나절 살피는 것만도 큰 기쁨인데, 이곳엔 다른 볼거리도 있다. 기념관 앞에 조성된 연꽃 공원이다. 나무 데크를 사이로 두고 무성하게 핀 연꽃과 잎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줍게 얼굴을 내민 연꽃부터 활짝 필 날만 기다리는 연꽃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만난다.

복원된 한용운 선생의 생가. 홍성군청 제공

길산면에는 1992년 홍성군이 복원 사업을 통해 조성한 김좌진 장군의 생가와 기념관, 공원 등이 있다. 장군의 삶의 궤적이 각종 자료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같은 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도 결성면에 복원됐는데, 생가 뒤 야트막한 야산엔 ‘민족시비공원’도 함께 조성돼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명소로 등극했다. 생김새가 다른 돌마다 시가 적혀 있는 게 특징이다. 백석의 ‘모닥불’, 정한모의 ‘나비의 여행’, 이육사의 ‘절정’, 유치환의 ‘바위’ 등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시인들의 시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돌아서는 발걸음엔 유치환의 시 ‘바위’의 애절한 문장이 새겨진다.

홍성/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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