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탐탐] ⑭ 전국 방방곡곡 식재료 탐방…1만㎞ 대장정(끝)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회를 끝으로 '호식탐탐'의 연재를 마칩니다.]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알찬미, 귀밝이술, 고슬, 난축맛돈, 황금알, 한국식 샤퀴테리, 곤달비, 황금팽이 아람, 색깔보리, 새알찬, 우리맛닭, 플럼코트, 썸머킹.
지난 1월 '식재료 시대'를 맞아 전국 각지에 숨어 있는 식재료에 관한 식도락기를 써보고자 농촌진흥청 대변인실과 의기투합한 지도 8개월이 지났다.
그간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고, 취재한 농작물과 가공품 개수만 해도 13개. 기획·조사 단계에서 멈춘 것까지 합치면 두 손으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식재료가 취재 노트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지역으로 따져봐도 경기, 충북, 충남,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제주도, 강원도 끝자락까지 국내 모든 지역을 다녔다. 말 그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쉴 새 없이 취재차량과 비행기를 타고 돌았다. 지금까지 출장 거리만 해도 1만㎞가 넘는 대장정.
농진청 각 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을 인터뷰해 식재료에 대한 학술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공부하고, 실제 식재료를 재배하는 현지를 방문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여정은 힘이 들기보다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독농가(篤農家·열성스럽게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농가)만 어림잡아 30명. 그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는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10인의 셰프 군단과 식재료 전문가들의 냉철한 평가와 새로운 식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레시피는 호식탐탐의 큰 축이 됐다.
이제 막 한반도에 동이 트기 시작한 식재료 시대를 조명하고,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으로 출발한 호식탐탐은 그렇게 각 분야 전문가가 씨줄과 날줄이 돼 만들어졌다.
취재팀의 역할은 연구자, 생산자, 소비자를 대표하는 셰프와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생생하게 담아내는 게 전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식재료를 굳이 꼽아야 한다면 호식탐탐의 포문을 열었던 이천 알찬미와 취재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제주도 난축맛돈이다.
알찬미는 임금님쌀로 유명한 이천 지역의 쌀품종인 일본산 아키바레(秋睛·추정)를 4년 만에 국산화하는 저력을 보여준 식재료다. 연구자의 노력으로 품질을 향상하고, 독농의 과감한 도전,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보기 드문 사례다.
호식탐탐 기획 단계부터 품종의 국산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국뽕'을 경계하고, 정말 맛있고, 품질 좋고, 정성이 담긴 식재료를 소개하자고 다짐했지만, 알찬미의 성공신화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밥상의 주인공 '밥'의 식재료인 쌀은 첫 화의 주제로 알맞았다.
농진청 난지축산연구소에서 만난 난축맛돈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 중 하나다. 서울 식당가에서 아름아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소고기만큼 비싼 돼지고기' 난축맛돈을 우연한 기회에 식당에서 맛보자마자 제주도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호식탐탐 기획을 통틀어 가장 긴 이동 거리이자 가장 긴 2박 3일의 출장을 계획하고, 농진청 대변인실 박진우 전 홍보팀장과 김승호 주무관, 박찬일 셰프와 함께 짐을 꾸렸다.
제주도 재래돼지의 근내지방 함량(마블링)이 높은 특성을 유전체선발 기술을 통해 만들어낸 난축맛돈은 8년의 연구 끝에 세상에 나왔다. 마블링이 좋아 비선호 부위인 등심까지도 구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제주도 흑돼지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모색형질은 농업 연구의 결정체와 같았다. 특히 27년간 난지축산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난축맛돈 개발에 매진한 조인철 농업연구관의 뚝심이 인상 깊었다.
난축맛돈을 만나러 가는 여정도 기억에 남는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렌터카를 운전해 도착한 난지축산연구소는 제주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축산연구시설은 대개 비슷하지만, 혹시 모를 전염병 예방을 위한 살균 소독은 필수다. 에어소독에 방역복 착용은 기본이고, 촬영 장비까지 섭씨 75도가 넘는 건식 사우나에서 열소독을 마쳐야 비로소 검은 털로 뒤덮인 우람한 난축맛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면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식재료를 꼽았지만, 나머지 11개의 식재료 역시 취재 현장의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기억날 정도로 인상 깊었다는 점은 명기해 두고 싶다.
연재를 마무리하기 전에 호식탐탐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해준 전문가 패널들의 소회를 전하고 싶다.
호식탐탐의 식재료 역사와 문헌자료 자문을 맡은 고영 음식문헌학자는 "많은 사람이 농작물에 얽힌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는 '거꾸로 이야기가 농작물에 대한 관심을 북돋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찬일 셰프는 "농업을 연구하는 연구원과 박사님들의 진정성을 발견한 것이 제일 큰 감동이었다"면서 "농업을 연구하는 사람들답게 담백하고, 투박, 순진한 현장의 연구자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리산 제철음식학교 고은정 대표는 "나는 좋은 식재료, 새로운 식재료를 만나면 심장박동이 빨라 지는 사람이다. 일단 뜯어 입에 넣어 맛을 보고, 조리 방법을 생각하면서 완성된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면서 "호식탐탐 기획에 참여하며 얻은 새로운 정보와 품질 좋은 식재료와의 만남은 잊지 못할 인연으로 기억될 것이다.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시즌 2를 기대해 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끄는 문정훈 교수는 "모든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데에는 관점이 있기 마련이다. 호식탐탐은 '먹거리'라는 것을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 했던 다양한 매체들의 접근과는 결이 달랐다"면서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자의 측면, 재배하는 생산자의 측면, 가공하고 유통하는 가공·유통업자의 측면, 그리고 최종 소비자의 측면까지 조사하고 분석한 4차원적 르포였다"고 총평했다.
마지막으로 호식탐탐을 함께 이끌고, 아이템 회의와 식재료 샘플 준비, 배송, 출장지 안내까지 전천후 활약을 한 농진청 대변인실 박진우 전 팀장과 김승호 주무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연재를 마친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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