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 아래 청와대 자리, 언제부터 주목받았을까…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주말엔]

김보미 기자 2023. 8. 26.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5년 청화대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가 시작되는 광화문 뒤로 경복궁을 둘러싼 북악산은 백악산이라고도 불린다. 궁궐의 배후 공간인 백악을 병풍처럼 둘러싼 지금의 청와대 일대는 언제부터 주목받았을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역사강좌 제16권으로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 ‘청와대, 파란 기와집 역사 이야기’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시민에게 개방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청와대와 그 주변 역사 및 의미 등을 담았다.

현재 경복궁 북쪽 후원에서 청와대 일대 지역이 한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약 1000년 전 고려 문종~숙종 시대 남경 천도가 추진되면서다. 숙종9년(1104년) 남경의 궁궐 자리였던 곳이 백악 아래 터다.

원 간섭기 남경은 한양부로 격하됐으나 고려시대 말기로 가면서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 한양의 중요성은 커졌다. 조선으로 새 시대를 연 태조 이성계가 백악을 주산으로 삼아 한양에 도읍을 마련했고 태조4년(1395년)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청와대는 궁궐 후원이 됐다.

지난해 5월 청와대 개방 후 첫 주말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관람을 마친 시민들이 본관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조선시대 왕들은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펼쳐지는 이 지역에 공신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회맹단이라는 제단을 쌓았다. 공신회맹제는 경복궁 뒤쪽 신무문 밖, 즉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서 제를 올린 의식이었다. 백악 자락을 배경 삼아 풍류를 즐기던 조선 선비들이 남긴 글과 그림을 보면 청와대 일대가 왕에게만 허락된 공간은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을 고종이 중건하면서 경복궁 후원 영역은 큰 변화를 맞았다. 고종5년(1868년)이후 중일각·오운각·융문당·융무당·경무대 등이 들어서면서 초기 경복궁이 미치지 못했던 곳까지 후원으로 확장됐다.

특히 경무대는 과거 시험, 순사 훈련 등 문무를 아우르는 국가 주요 행사가 거행되는 공간이었다.

1929년 경복궁과 후원 일대에서 열린 일제의 조선박람회 전경 사진 엽서. 경복궁 후원 숲속에 여러 건물 등이 들어서 역사성을 훼손하고 있다. 개인소장.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인 1910년 경복궁은 조선총독부 청사 부지로 훼철돼 건물들도 철거됐고, 경무대 역시 운동회, 유치원 원유회가 개최되며 목적과 다르게 변질됐다. 1939년 일제는 경복궁 후원에 조선 총독부 관저를 세웠고, 광복 이후에도 2년 3개월간 미 군정 중장 관저로 사용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무대는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가 됐다.

경무대 이름이 ‘청와대’로 바뀐 것은 1961년이다. 윤보선 대통령이 당시 김영상 서울시사편찬위원회(현 서울역사편찬원) 위원의 제안에 따라 명칭을 바꾸면서 ‘청와대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1991년 9월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선 청와대 신축 본관이 준공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통령이 머무는 공간이었던 청와대는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후 청와대뿐 아니라 북안산·인왕산 일대가 요새화되며 출입은 더 엄격히 통제됐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제한적이나마 주변이 개방됐고, 지난해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으로 청와대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청와대, 파란 기와집 역사 이야기’는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전자책으로 열람할 수 있고, 서울 시내 공공도서관에도 무료 배포될 예정이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공간의 역사를 담아낸 이번 서적이 오랜 세월 국가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한 청와대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