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36] 중세 벨기에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을 이프르입니다. 고즈넉한 풍경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의 사람들로 가득한 지역입니다. 플랑드르 지역에서 이름난 섬유 중심지였기에 삶도 풍족하기 그지없었지요. 옷차림새에는 기품이 있었고, 시민들 하나하나 교양으로 넘치는 모습입니다.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햇빛이 가득한 주말의 오후 광장은 시민들로 가득합니다. 이들 품에는 저마다 고양이가 안겨있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시민들이 하나하나 광장 중앙에 있는 상업용 건물 ‘클로스 홀’로 들어갑니다.
고양이 축제라도 열리나하는 생각도 잠시. 종탑에서 고양이가 집단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이 고양이를 공중으로 휙 내던진 것이었습니다. 유연함으로 이름난 고양이지만, 20m가 넘는 높이에서는 살아날 재간이 없었지요. 광장에는 죄 없는 동물의 비명과 피비린내로 가득합니다. 손뼉 치면서 왁자지껄 웃고 있었던 시민들. 대학살의 현장이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고양이를 마녀의 동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죽임으로써 마녀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고양이 던지기는 이프르 지역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합니다. 매년 봄 철마다 광장에는 고양이 사체가 산더미처럼 쌓였지요. 벨기에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소박맞던 동물이 바로 고양이었습니다. 만국의 집사들을 분노하게 할만한 이야기지요.
고양이가 인류 역사에서 늘 학대당한 건 아니었습니다. 때론 영물로서 존중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고양이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8월 8일이 세계 고양이의 날이었습니다.
고양이를 신으로 모신 이집트
“고양이는 우리의 친구이자 신이다.”
중세 유럽과는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 대접을 받았습니다. 제1왕조가 설립되던 기원전 3100년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 고양이가 처음으로 신의 이름을 달고 등장합니다. ‘마프뎃’이라는 신이었지요. 뱀·전갈·악마 따위로부터 파라오의 방을 지키는 존재. 기원전 2800년부터 이어진 2왕조 시기에도 고양이는 신으로 명성을 이어갑니다. 바스테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토테미즘적인 성격이 있었기에 동물은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중 고양이는 제일 사랑을 받았던 것이지요.
위 사진은 바스테드 상입니다. 고양이 머리를 하고 있지요. 고대 이집트 왕족이 키우는 고양이는 황금의 접시에서 먹이를 먹은 것으로 전해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고대 이집트가 고양이를 숭배한 이유는 이들이 삶에 이로운 동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식량을 갉아먹던 쥐를 고양이가 잡아 먹어주었지요. 사막에서 불현히 나타나는 코브라와도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이집트인으로서는 고양이가 예쁘고 고마울 수 밖에요.
신은 제물을 필요로 합니다. 고양이의 신 바스테드도 마찬가지였지요. 이집트인들은 바스테드에 경의를 표하면서 고양이의 사체를 바쳤습니다. 물론 직접 죽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사한 고양이가 제물이 되었습니다.
미라의 나라답게,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이 사후세계에서도 삶을 이어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사후세계에서 안녕을 기원했듯, 고양이의 행복도 염원한 것이지요.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동물과 죽어서도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사람들은 고양이가 죽으면 눈썹을 깎고 눈물을 흘린다”고 썼습니다.
경배의 대상에서, 저주의 표적으로
중세에도 고양이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었습니다. 식량 창고를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지요. 13세기 잉글랜드에서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도들을 위한 문서인 ‘안크렌 위세’(Ancrene Wisse) 의 한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고양이 한 마리 외에는 어떤 짐승도 소유하지 말지어다.”
고양이를 향한 사랑이 듬뿍 느껴지지요.
인류와 고양이의 애정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종교재판이 막을 올리기 시작한 1233년이었습니다. 이 때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종교재판소를 설립합니다. 이단자를 정례적, 조직적으로 심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세 유럽은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을 비롯한 타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왔습니다. 가톨릭 교황청이 승인한 믿음만이 ‘진리’라는 메시지가 귀족부터 시민계급까지 퍼져갑니다.
‘다름’을 향한 편집증적인 공격이 이어집니다. 종교 재판관들은 약간의 미신까지 곁들여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이단자들은 사탄이자 악마이며, 이들은 검은고양이로 저주를 건다”고요.
종교재판소가 설립된 그해(1233년), 독일 마인츠에서는 사제인 콘라드 폰 마르부르크의 주도하에 종교 재판이 시작됩니다. 그는 재판 보고서에서 “이단자들이 검은고양이를 품고 사탄을 숭배했다”고 적었습니다. 길고 긴 고양이 수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검은고양이를 향한 혐오는 전 유럽으로 퍼져갑니다.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는 아서왕 신화에 나오는 괴물고양이 이야기까지 더해 혐오 정서와 접목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축제로 자리잡은 고양이 학살
중세 유럽은 14세기 들어 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소빙하기가 찾아오면서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정치적 위기는 커져 갔습니다.
종교인과 귀족들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희생양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었지요. ‘마녀사냥’이었습니다. “이들이 사탄과 결탁해 날씨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마녀로 몰린 이들은 화형대에 올랐습니다. 그 옆에는 검은고양이가 함께 묶였지요. 마녀사냥은 유럽을 너머 미국에서까지 이어졌을 정도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마녀사냥이 잠잠해진 뒤에도 고양이 학살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이프르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는 각양각색으로 고양이 학대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프르 지역에서는 고층 높이에서 고양이를 던졌고,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고양이를 태우기도 했었지요. 꼬리에 불을 붙이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고양이를 보며 깔깔 웃어대곤 했습니다. 1648년 루이 14세가 직접 불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지요.
이프르 지역에서 고양이 학대를 멈춘 건 1817년. 이미 수 천, 수 만 마리의 고양이가 이유 없이 죽은 다음이었지요. 지금도 벨기에 이프르 마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카텐슈토트라는 축제를 엽니다. 성당에 올라가 고양이 인형을 던지는 행사지요. (고양이를 추모하는 방법인지, 당시의 학살을 희화한 것인지는 모호합니다.)
고양이 사랑을 실천한 종교, 이슬람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슬람은 다소 폭력적인 종교로 비치지만, 고양이에게만큼은 평화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슬람 창교 이후부터 고양이가 극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양이 사랑은 이슬람의 시작부터 대단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동반자이자 그의 전승록을 쓴 아부 후라이라(Abu Hurairah). (이름의 뜻도 ‘새끼 고양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무함마드께서는 ‘고양이에게 음식과 물을 주지 않은 여성이 지옥에 갔다’고 말씀하셨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씀이니 신도들이 고양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
고양이의 ‘위생관념’도 이슬람이 사랑하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중세 시대에 이슬람인들은 위생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잘 씻지 않는 유럽 기독교인 과는 달리 말이지요.) 사원을 들어갈 때도 손과 발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수시로 자기 얼굴을 닦는 고양이는 이슬람교도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벼룩과 병균을 옮기는 쥐를 잡는 동물이라는 점도 이슬람의 사랑을 받는 배경이었지요. 노아의 방주에 탄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이슬람이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탄 동물들은 쥐에 대해 불평을 했다. 그가 더러운 균을 옮기고 식량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신께서 사자에게 재채기를 하게 만들었다. 사자의 입에서 작은 동물이 튀어나왔다. 고양이었다. 그는 곧바로 쥐를 잡아먹었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극진했던지, 이슬람 왕조인 맘루크의 5대 술탄 바이바르스는 고양이 보호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동물 보호 시설이었지요. 지금도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터키·이집트에 가면 상팔자를 누리는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고양이에게만큼은 기독교도보다 이슬람교도가 더욱 친한 친구였던 셈입니다.
대항해시대에도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대항해시대에도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 했습니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선박에서는 고양이가 필수적인 ‘선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쥐가 식량을 갉아먹거나, 물을 오염시키거나, 병균을 옮기면 선원 전원이 전멸할 수 있게 됩니다. 선박을 쥐로부터 지켜줄 고양이는 필수적인 동료였습니다.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고양이는 때론 일기예보 역할도 했습니다. 고양이가 불안해하고 안절부절못하면 그건 곧 폭풍이 온다는 의미였습니다. 낮은 기압을 몸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고양이였던 것이지요.
오랜 시간 고양이는 뱃사람의 친구였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고양이가 필요로 하지 않았을 때에도 뱃사람들은 고양이와 함께 배에 올랐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군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함께 탄 고양이 블랙키는 세계적인 스타 중 하나였습니다. 수상 윈스턴 처칠이 대서양을 건너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날 때 함께 하면서 명성을 얻었지요.
고양이는 이제 인간의 영원한 친구입니다. 1963년 10월 18일, 프랑스가 우주 비행선을 발사합니다. 그곳에는 암컷 고양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펠리세트라는 고양이였습니다. 우주를 항해한 최초의 고양이입니다. 부침은 있었지만 고양이와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함을 자랑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의 거두 마르셀 모스는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은 개를 길들였지만, 고양이는 인간을 길들인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세계의 수 많은 집사들이 이를 보증합니냐옹.
<네줄요약>
ㅇ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의 대접을 받았다.
ㅇ식량을 갉아먹고 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는 이로운 행동 때문이었다.
ㅇ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본격화하면서 검은고양이를 향한 저주가 시작됐다.
ㅇ부침은 있었지만, 인간과 고양이는 평생을 함께할 사이다.
<참고문헌>
ㅇ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지성사, 2023년.
ㅇ다니엘 라코트, 고양이의 기묘한 역사, 사람의무늬, 2012년.
역사(史)에 색(色)을 더하는 콘텐츠 사색(史色)입니다. 역사 속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명랑히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알찬 지식을 전달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매주 토요일 알롱달롱한 역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