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무조건 배달, CCTV 없는 곳 안 가…대낮 산책도 포기"
순찰 강화·CCTV 확대…서울시·구, 대응책 마련 '비상'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음식은 무조건 배달음식으로, 이동은 자차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A씨는 며칠 전 집 바로 앞에 위치한 공원을 걷다 뒤에서 다가오는 남성을 보곤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는 "알고 보니 '러닝' 중인 남성을 오해한 것이었다"며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건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강력 범죄로 서울 시민들의 불안감이 상당한 가운데 특히 칼부림에 이어 성폭행 사망 사건까지 발생한 관악구 구민들의 불안감은 말로 못할 수준이다. 사건 이후 신림역을 오가는 유동인구도 크게 줄었다.
A씨는 "외출 자체를 많이 하지 않고 있다"며 "나가더라도 CCTV가 없거나 외진 곳은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관악구에 사는 또 다른 주민 B씨도 "요새 식사는 무조건 배달로, 외출은 자동차로 하고 있다"며 "신림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이후 단 한번도 신림역 등 유흥가에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칼부림에 이어 성폭행 사망사건까지 발생한 이후 특히 아내의 외출에 더 신경이 쓰여 대부분 자차로 동행하고 있다"며 "남성인 나도 이렇게 두려운데, 여성인 아내는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단순 관악구민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C씨도 "불과 몇 달 전, 성폭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등산로로 나들이를 계획했었다"며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묻지마 범죄에 나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최근 사람이 많은 곳으로의 외출은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도 "무서워서 지하철역, 유흥가 등에 갈 수가 없다"며 "분리수거도, 대낮 산책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시민들이 불안감에 떨자 서울시는 물론 각 자치구는 갖가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관악구는 구청장 지시로 생활안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는 등 관력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도 지난 18일 주민들에게 대책 마련을 약속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다.
생활안전 종합대책에는 치안을 관할하는 경찰과는 별개로 구 차원의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원안전지킴이 신설을 비롯해 사건 발생 지역을 비롯한 취약지역에는 폐쇄회로(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폭력, 쓰러짐 등 특정 움직임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지능형 관제시스템도 확대한다.
다른 자치구들은 우선 민·관·경 합동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영등포구는 최근 영등포경찰서, 외국인 자율방범대와 함께 합동 순찰을 실시했다. 민‧관‧경 합동 순찰대는 외국인 밀집 지역, 지하철역 주변 등을 중심으로 9월2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야간 순찰을 진행한다.
은평구는 북한산 산책로가 많은 관내 특성을 감안해 경찰·소방·병원·북한산 국립공원사무소와 함께 특별 TF를 구성했다. 또한 공원 안전지킴이 60명으로 순찰팀을 만들어 무장애 숲길, 은평둘레길 등 산지형 공원을 집중 순찰할 계획이다.
성북구는 지난 22일 민·관·경 치안 관계자 긴급회의를 여는 한편 '성북형 안전 모델' 구축에 나섰다. 구 CCTV 4000여대와 서울시 CCTV 6만6000여대를 통합 운영할 수 있는 'CCTV 안전망 통합 플랫폼 연계 구축 사업'을 시작한다. 강남구도 2026년까지 CCTV를 매년 50대씩 총 200대 추가 설치하고 내년까지 인공지능 기반 지능형 선별관제시스템을 구축한다.
성폭행 사망 사건을 감안해 여성을 대상으로 호신술 교육, 호신용품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자치구도 있다. 광진구는 '광진구 여성 호신술 아카데미'를 통해 여성들에게 실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교육한다. 노원구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호신용품 대여 서비스를 추진하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안심할 수 있는 서울'을 위한 총력 대응을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23일 25개 자치구청장과 무차별 범죄 대응 회의를 갖고 자치구·경찰청과 협업해 경찰청 지정 범죄예방강화구역(160개) 여성안심귀갓길(353개) 외에 CCTV 미설치 치안 취약지역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범죄예방환경디자인(CPTED·셉테드) 대상 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오 시장은 "서울은 밤에도 여성이 안심하고 혼자 걸을 수 있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무차별범죄가 계속되면 이런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가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며 "정부와 경찰 정책에 발맞춰 서울시와 자치구도 다시 시민이 밤에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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