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섬’ 이어도에서 발견된 농업의 흔적
이어도 인근 해역서 수은 농도 급격한 증가 확인
중국 양쯔강 하류에서 배출된 막대한 화학물질 쌓인 것으로 추정
“인류세 생태계 변화 요인 찾을 단서 될 것”
제주도에서도 남쪽으로 149㎞를 더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전설의 섬’ 이어도 인근에서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수은이 검출됐다. 전 세계 인류세(人類世)의 기준으로 삼을 지형이 내년 최종 선정될 예정인 가운데 한반도에서도 인류세의 시작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나온 셈이다.
장태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25일 “한반도의 인간 활동이 급격히 늘어난 시기와 영향력을 알아낼 수 있는 증거를 이어도 해저 퇴적층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를 말하는 지질학적 용어다. 지질학계에서는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기준으로 삼을 지형과 물질이 통일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워킹그룹(AWG)은 지난 7월 인류세 대표 후보 지형으로 캐나다의 크로포드 호수를 정하고 국제층서위원회(GCS)의 결정을 통해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우리가 현재 인류세에 살고 있다는 선포도 함께 이뤄질 전망이다.
장 교수는 “인류세의 시점과 대표 물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실제 인간이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며 “앞으로 닥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데 필수적인 연구”라고 평가했다.
인류세의 시작은 이미 기후 변화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달 9일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7월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40년 이후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다. 폭우와 가뭄으로 인한 자연 재해도 꾸준히 늘고 있다. 다만 실제 인간의 활동이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2019년 한반도를 중심으로 인간의 활동이 급격히 늘어난 시기를 찾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지역은 한강 하구의 강화도 조간대, 신안군 조간대, 이어도해양과학기지 등 총 3곳이다. 모두 강에서 흘러들어 온 물질이 쌓이는 곳이다. 바다 생태계의 조절자 중 하나인 플랑크톤의 퇴적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기후 변화와 생태계의 영향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 교수는 “한반도와 중국에서 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비료 성분인 질산염과 인산염이 인근 환경에 많은 변화를 줬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플랑크톤의 비율 변화와 함께 분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퇴적층에 쌓인 물질을 분석한 결과, 이어도 퇴적층에서 수은의 급격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양의 2배에 달한다. 수은은 농업, 광업 채굴, 화력발전으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생물에 축적되는 특징이 있다. 플랑크톤에 수은이 축적되면 먹이 사슬을 따라 대형 물고기로 전달되고 생태계 균형을 깨뜨린다.
실제로 이어도는 중국의 양쯔강 하류와 맞닿아 매년 막대한 양의 화학물질이 쌓이고 있다. 2019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 따르면 중국에서 대기중으로 배출된 수은은 유기물과 결합해 매년 21t(톤)씩 서해와 남해로 흘러간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한반도에서 수은의 배출이 시작된 시기를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대 측정과 생물군을 분석하고 있다. 질산염, 인산염 같은 화합물에 대한 분석도 이뤄지고 있다.
장 교수는 “현재 데이터를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일부 생물군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며 “분석 결과가 나오면 인간의 활동이 해양 생태계를 어떻게 바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기후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류세 이전의 자연적인 기후 변화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으나 인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장 교수는 “조사 지점을 점차 늘려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나갈 예정”이라며 “인간의 활동에 대해 생태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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