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⑮가수 김광석이 살려낸 고향 피란민시장

백도인 2023. 8.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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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대구 중구 방천시장 골목에 '김광석 길' 만들어 연 160만 찾는 명소로
김광석 조형물·벽화·노래로 향수 자극…길거리 공연·이벤트로 즐길 거리 늘려
길 따라 카페·음식점 등 수백개 점포 들어서고 전통시장도 활기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더욱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날로 늘어가는 쇠퇴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대구 '김광석 길' [촬영 = 백도인 기자]

(대구=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김광석은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우리 시대 최고의 가수 가운데 한 명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의 노래와 마음을 울리는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모든 이의 사랑을 받은 국민 가수이기도 하다.

김광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고향 대구 중구에는 그를 기리는 거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이 있다. 그 길에는 김광석을 기억하게 하는 수많은 조형물과 벽화가 있고, 종일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길은 김광석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문화 콘텐츠를 넘어 망가진 골목상권을 되살려낸 최고의 관광 콘텐츠이기도 하다.

한해 160만명이 찾는 대구 최고의 명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김광석 길은 진화를 거듭하며 이제 문화의 거리, 만남의 거리, 맛의 거리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대구 최대 전통시장의 몰락

대구 중구가 '김광석 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09년께이다. 2년 후 개최될 '2011 세계육상경기대회'의 마라톤 코스에 이 일대가 포함되면서다. 그러나 너무 어둡고 지저분해서 도저히 그대로 둔 채 대회를 치를 수 없었다.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알려진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은 아찔한 일이었다.

김광석길(아래)과 방천시장 옛모습 [대구 중구 제공]

이 일대는 한때 대구 경제를 떠받치다시피 했던 방천시장이 있는 곳이다.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의 제방을 따라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이주민과 피난민들이 몰리면서 한때는 점포 수만 1천개가 넘었던, 대구의 3대 재래시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인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공사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시장은 급격히 망가졌다. 먼지와 소음 등으로 장사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오고 인구가 신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시장은 회생 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대구 중구는 방천시장 회생을 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김광석 길'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350m 길이의 이 길은 방천시장의 쇠락으로 점포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며 우범지대로 전락했던 터였다.

김광석 길의 벽화와 외국인 관광객들 [촬영 = 백도인 기자]

그러나 처음부터 김광석 길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구 중구는 이 길을 지역 유명 인사를 기리는 길로 만들기로 하고 김광석과 함께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을 놓고 고심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3명 모두 이 길과 나름의 인연이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김광석이었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데다, 주옥같은 수많은 히트곡 덕분에 팬들의 사랑이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 이 길이 어린 시절의 김광석이 해직 교사 출신으로 시장 안에서 전업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함께 거닐었던 길이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김광석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거닐었던 길에 착안

대구 중구는 주변 환경을 정비한 뒤 이 길의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벽면에 김광석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벽화 40여개를 그려 넣었다. 벽화는 지역 화가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그리도록 했다. 이들 벽화는 관광객들이 식상하지 않도록 매년 새롭게 그려진다. 길 군데군데에는 스피커를 설치해 김광석의 노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스피커 아래에는 의자들을 설치해 편안히 쉬며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김광석 길의 벽화 [촬영 = 백도인 기자]

거리 중간중간에는 소규모 공원을 만들어 주말이면 다양한 장르의 거리공연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도록 했다. 김광석의 생전 공연 모습 등을 담은 조형물 10여개도 설치했다. 해마다 김광석을 기리는 추모콘서트를 열고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 '김광석 길 벽화 다른 그림 찾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와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다.

김광석 길은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팬들을 끌어모았다. 2013년 4만3천여명에 불과했던 방문객 수가 2015년 84만명으로 급증했고 2016년에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증가세는 이어져 2017년 146만명, 2018년에는 159만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 118만명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영숙 골목문화해설사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올 거라고는 사실 생각을 못 했다. 특히 연예인들의 인기라는 게 보통 몇 년이면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관광객이 늘고 있다"며 "김광석 길이 말 그대로 기적과 같은 변화를 끌어냈다"고 놀라워했다.

김광석 길의 소규모 공연장 [촬영 = 백도인 기자]

10억여원 사업비로 각종 상 휩쓸며 최대 관광 명소 부상

김광석 길은 사람과 예술이 함께하는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면서 '2013년 우리 마을 향토자원 베스트 30선', '2014 대한민국 베스트 그곳', '2016 지방자치경영대상', 6년 연속 '한국관광 100선'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야외 공연장 건립비를 포함해 총 10억여원에 불과한 사업비로 거둔 성과다.

서울에서 왔다는 권태수(34)씨는 "군대 다녀온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면서 "김광석 팬이어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벽화와 조형물이 노래와 어우러지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게 인상 깊었다"면서 "길을 걸으며 김광석의 노래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김광석 길에는 카페와 음식점, 액세서리점, 웨딩숍 등이 빼곡히 들어서며 아연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 새로 생겨난 점포만 수백개에 이른다. 특히 다양한 취향의 카페와 맛집들이 속속 입주하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면서 김광석 길은 이제 만남의 거리이자 맛의 거리, 문화예술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김광석 길 따라 빼곡히 들어선 점포들 [촬영 = 백도인 기자]

김광석 길은 황폐한 방천시장의 회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광석 길과 연계해 방천시장의 빈 점포와 골목을 '예술 테마 공간'으로 만들려는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작품 판매까지 하는 '문전성시사업' 등이 속도를 내면서 빠르게 옛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이영숙 해설사는 "김광석 길과 인근 방천시장의 점포들은 대부분 텅텅 비어있던 곳들이었다"며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수백개의 점포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다 죽은 상권이 살아났다"고 설명했다.

전은화 대구 중구 관광시설팀장은 "김광석 길 일대는 김광석에 더해 다양한 공연, 멋스러운 카페, 다양한 맛집들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가 커지고 있다"면서 "즐길 거리에 먹을거리까지 더욱 풍성해지고 있는 만큼 반짝인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 팀장은 "그냥 묻힐 수 있는 지역의 인물을 문화와 관광 콘텐츠로 키워내 무너진 골목상권을 되살려내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낸 사례"라며 "대중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섬세하게 배려했던 것이 성공의 배경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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