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돌격` 대통령, `잘 모신다` 착각하는 여당[한기호의 정치박박]
국민 '태도' 볼 것, 尹 메시지 강경일로
"日=파트너"라며 공산파쇼 때린 8·15
與, 국민눈높이에 보완없이 되풀이만
기회주의·복지부동, 尹철학 이해 의문
깊이없는 심기경호로 때우다간 자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겨우 35% 안팎을 오가고 있는데, 최근 2주간은 하향세다. 집권여당의 경우 육성으로 응답해야 하는 전화면접 기반 설문에서 제1야당에 '근소 우위'를 보이는 듯하지만, ARS 여론조사에선 제1야당에 두자릿수 격차를 허용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조사방법상 오차일지 '침묵하는 다수'를 반영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권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단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멜트다운 사고 12년 만에 오염처리수 공식 방류를 시작한 게 악재겠다.
다만 '오염수 공방'은 몇달간 계속된 것이고, 국민은 여권의 '태도'를 봤을 것이다. '일본' 문제라면 지난 제78주년 광복절부터 특히 심상찮았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로선 유례없이 '일본 제국주의' 치하 투쟁사(史)를 거의 생략하고 현대 일본을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끌어안아 놀라게 했다. 언급 횟수도 자유(27회), 전체주의(9회), 공산·북한·경제·민주주의(각 8회), 독립(7회), 세계(6회) 순으로 많았고 일본·한미일이 같은 3회였다. 또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라 재해석하고, "공산전체주의" 성토와 "한미일" 연대론으로 일관했다.
8·15였지만 6·25를 방불케 했다. 열흘 뒤(25일)에도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위 1주년 행사에서 "시대착오적 투쟁과 혁명,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건 결코 진보가 아니며 우리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며 "(보수든 진보든) 날아가는 방향,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은 일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절 때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다"며 진보야권을 '선동·패륜' 주체로 규정한 게 겹쳐 보인다. 통합위에 "자유·평화·번영 그리고 인권과 법치를 지향하는 사회로서, 우리 모두 한사람의 낙오자 없이 완벽한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애써달라"며 '헌법'을 통합 기준 삼기도 했다. 대통령이 체제전쟁 선봉장을 맡은 셈이다.
'자유' 가치를 내세운 윤 대통령에게 우파 진영에선 구(舊)보수정권과 다른 선명성에 반색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가깝다. 박스권 지지율에 갇히는 배경일 수도 있다. 일반국민이 집권세력에 원하기 마련인 '프로다움'과 '안정감'은 느끼기 어렵고 '비약'이 많다. 대통령의 '원맨쇼'로 비치는 상황도 한몫 한다. 여당이 만들어내는 변수는 없고 "집행기구" 수준에 그친 탓이라고 본다. 완연한 수직관계를 자랑한 탓에 평가대에 오르는 건 용산 뿐, 이따금 언행·관리실패만 크게 부각된다. 국민이 적응했든 체념했든 대통령 지지율은 수렴 조짐이라도 보이는데, 여당은 여전히 들쭉날쭉이다. 길게 보면 3·8 전당대회로부터 반년간, 박스권 안에서 하방압력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 여당 지도부는 줄곧 대통령실의 선행 메시지를 반복하거나, 예상하기 어려우면 입을 걸어 잠근다. 세계관 동기화 수준이 높은 민주당과는 대조적이다. 윤 대통령 8·15 경축사가 생중계되기 직전, 당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 등이 낸 SNS 메시지와 대변인 논평에 '해방 78주년' 기념은 있어도 '건국' 언급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윤핵관'으로 불리지 못한 김진태·나경원 등 당을 오래 지킨 인사들이 '건국 75주년'을 말했다. '건국 날짜 다툼은 소모적'이란 용산의 의중을 미리 감안했다고 해도, '과정으로서 건국'조차 지도부는 시사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했는지, '야당 공격'만큼은 한없이 거칠던 것과도 결이 맞지 않다. 직후 야당과 벌인 설전도 '공산전체주의 비판' 이슈에 국한됐다.
오염수 정쟁에서도 여당은 능동성보다 기회주의, 늑장대응만 드러냈다. 지도부가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해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넘쳐난다"고 자신한 말은 일본이 방류를 개시한 24일에야 나왔다. 그조차 'IAEA 검증, 최대한의 안전 보장'이란 말 뒤에 숨으니 힘을 잃었다. 방류를 막을 것도 아니면서 '우리바다지키기검증TF'란 조직을 만들었고, 민간 전문가를 발굴해 팀을 이루지도 않았고, '셀럽'도 아닌데 줄줄이 '수산물 먹방'에 나섰다. 삼중수소 약 50배 중국 원전 방류에 침묵하며 '오염수' 표현만 고집하는 탈핵좌파에 '괴담, 풍평(뜬소문) 피해'를 탓한 건 한일 정부가 매한가지인데, 여당은 특히 정쟁에 의존했을뿐 '국경없는 진영전'이란 본질을 자각한 것도 아니다.
돌격대라고 부르기에도 '발'이 느리다. 광주광역시가 6·25 전범(戰犯) 북한군과 중공군에 군가(軍歌)로 부역한 중국공산당원 정율성 기념공원을 혈세로 조성해선 안 된다고 포문을 연 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었다. 지난 22일 박민식 장관의 SNS 글 게재 후 여당은 반나절을 넋놓고 있다가 부대변인급 논평으로 늑장 대응했다. 당정 간 철학 공유도 의문스럽다. 대통령이 8·15 때 '공산전체주의' 반쪽 메시지를 냈다면 여당이라도 일제 규탄으로'모든 전체주의에 반대'했어야 한다. 82년 전의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일제의 대미침략을 간파한 저서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에서 민주주의 미국이 소련·일본·나치스·파시스트의 '전체주의 이념' 전파의 장으로 전락 중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 윤 대통령이 내걸은 '노동개혁'은 노조 불법 단죄로 의미가 협소해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공론화한 집권 경험치를 여당 스스로 잊은 듯하다. 박근혜 정부 땐 기득권 노조의 각종 제도적 보장 요구가 관철될수록 영세·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한계에 몰리거나 퇴출된다고 이론에 기반해 지적한 바 있다.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이나 '매표(買票)복지 경계론'도 세금 아까운 일을 막겠다는 수준에 그쳐있다. 윤 대통령의 인생 책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밀튼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의 본질'을 소득 사용방법을 선택할 자유, '자발적으로' 어떠한 사람들과도 사고 팔 수 있는 자유, 사유재산권(재산을 소유할 자유)으로 설명하며 조세와 각종 규제를 대척점에 놓는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인" 개념과 무관치 않은 문제일텐데 여권은 안일하다. 조세가 국가 유지를 위해 국민 개개인의 재산권을 일부 침해하는 '필요악'이며, 거둬간 재정을 공직자들은 죄스러운 마음으로 최소한만 써야한다는 인식부터 확산시켰어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더라도. 하지만 여권은 '낮은 증가율'을 피력할 뿐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400조원대에서 해마다 50조원 이상씩, 600조원대로 불린 예산을 토대로 '증가 일로'의 예산을 두해째 짜고 있다. 또 '약자 복지'라거나, '가짜뉴스 피해 어민 지원금'이라고 이름붙인 예산을 비롯해 각종 대규모 토목 예산까지 '생색내기'에 유리하다면 자의적으로 꺼내 쓰려는 모습을 보인다. 야당과 방향 차이가 뚜렷하게 인식될진 모르겠다. '수도권 위기론' 발화자들이 밉다고 국민에 어떻게 들릴지도 모른 채 "1당 무난"을 공언하거나, 공천 실세가 누구를 배에 태우니 마니 하는 등 수준 낮은 심기경호에 골몰하다간 자멸만 앞당길 수 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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