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전담반 SIU]⑩ 8년간 819일 입원, 보험사 11곳서 3억 탄 ‘나이롱환자’

진상훈 기자 2023. 8.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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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단순 염좌로 2개월간 병원 신세
8년간 11개 보험사서 3억원 편취
소액 지급 건은 조사 어렵다는 허점 노려
같은 병실 장기 입원 환자가 제보해 조사 착수
일러스트=이철원.
“10년 넘게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봤지만, 동료 입실 환자에게 제보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발목을 접질렸다는 환자가 목발도 없이 매일 외출하고 한 달 넘게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날 만한 가벼운 사고라 제대로 조사를 하기 어려운 보험사의 허점을 노린 게 아닌가 싶다.”

A생명보험사 보험금 지급 심사팀에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는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의 장기 입실 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보자는 같은 병실의 여성 환자가 별다른 질환 없이 보험금을 타내려 들어온 이른바 ‘나이롱환자’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심사팀에서 사전 조사를 한 결과 보험사기 의심자로 지목된 40대 여성 B씨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단순한 발목염좌, 즉 발목을 삐었다는 이유로 대형 종합병원에서 무려 1개월 넘게 입원해 있었다. 흔히 발목을 삔 정도로 입원을 하는 사람도 극히 적은데, 이처럼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무엇보다 B씨는 여러 곳의 보험사 실손보험 상품에도 가입돼 있는 상태였다.

결국 A생명보험 심사팀은 해당 건을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에 의뢰했다. 수개월에 걸친 SIU의 잠복과 추적 조사 결과 B씨의 놀라운 실체가 밝혀졌다. 단순히 병명을 과장해 수령 보험금을 늘리려는 수준을 넘어, 8년 동안 무려 11곳의 보험사를 대상으로 거액을 속여 뺏었던 전문 보험사기꾼으로 드러난 것이다.

◇ 8년간 819일 병원 신세 3억원 편취

SIU 팀원들이 해당 병원을 방문해 확인한 B씨의 모습은 전혀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발목을 다쳤다는 환자가 아무런 불편함 없이 걸어 다녔고, 한 번도 통증을 호소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좁은 병실에서 시간을 죽이기가 지루한 듯 환자복을 입고 병원 주변의 커피숍 등을 오가거나 산책하러 다니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런 B씨의 모습을 보고도 병원 관계자들은 마치 익숙한 광경인 듯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았다.

SIU에 따르면 B씨를 담당했던 한 간호사는 “입원 초기부터 줄곧 퇴원을 권유했지만, 계속 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강제로 퇴원을 시킬 수도 없다 보니, B씨는 발목 염좌로 2개월 가까이 버틴 장기 입실 환자가 됐다”고 말했다.

SIU가 B씨의 보험사기 시도를 확신하게 된 것은 다른 보험사로부터 그에 대한 정보와 보험금 지급 내역을 확인한 이후부터였다. B씨의 병실에 손해사정인과 각기 다른 보험사 직원들이 자주 찾는 점을 의심해 다른 보험사에 정보를 요청한 결과 그가 무려 11곳의 보험사 실손보험 상품에 가입돼 있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B씨가 가입한 보험사들이 제공한 정보를 종합해 확인한 그의 과거 행적은 더욱 놀라웠다.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약 8년간 입원해 있던 기간이 무려 819일에 달했다. 보험사들은 적게는 수백만원 수준에서 많게는 6000만원 가까이 그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다.

방식도 거의 동일했다. 제보 건과 마찬가지로 단순 염좌나 허리 통증 등을 이유로 병원에 들어온 후 최대한 오래 병실을 떠나지 않고 버티며 지급 보험금 액수를 늘려갔다.

국내 한 종합병원 입원실./뉴스1

◇ 소액 청구 건은 조사 어렵다는 허점 노려

보험사기의 시작은 단순했다. B씨는 2015년 4월 실제로 음식점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친 후 치료를 받았다. 당시 진료를 맡았던 의사는 굳이 입원할 필요조차 없는 단순 염좌로 판단했지만, 주변에서는 B씨에게 입원을 하면 생각보다 많은 보험금을 타낼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

긴가민가하면서 보름 동안 병원 신세를 진 B씨에게 달콤한 보험의 ‘신세계’가 열렸다. 진료비와 입원비 등을 포함해 수백만원의 보험금을 받게 된 것이다. A생명보험 SIU의 확인 결과 당시 B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던 보험사는 별다른 추적이나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직 상태였던 B씨는 이후 본격적으로 전업 ‘보험금 사냥꾼’으로 나섰다. 음식점이나 계단 문턱, 친언니의 집 등에서 넘어져 발목이나 허리를 다쳤다며 반복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특히 그는 보험사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장소를 골라 사고가 났다고 포장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직업과도 같은 보험사기를 위해 아예 특정 병원 몇 곳을 지정하기도 했다. 다른 병원에 비해 입·퇴원이 까다롭지 않고 환자 관리가 비교적 허술한 병원들을 골라 자주 입원했다. 2018년에는 낙상 사고를 당했다며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경미한 상해라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당하자, 119 구급대를 불러 단골 병원으로 이송을 받는 촌극까지 연출했다고 한다.

B씨가 무려 8년의 기간 동안 보험사들의 추적을 피해 거액을 편취한 것은 소액 지급 건에 대해서는 치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역시 인력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억 단위로 지급되는 청구 건이 아니면, 철저하게 내역을 조사하기 어렵다”면서 “B씨는 특정 보험사로 청구 내역이 누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1곳의 상품을 가입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생명보험은 약 반년간의 조사와 타 보험사들과의 공조로 확보한 자료를 모아 B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A생명보험 관계자는 “B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줄곧 실제로 오랜 기간 통증을 겪어 병원 신세를 진 게 맞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범행 사실과 증거가 뚜렷한 다른 보험사기 사건과 달리 B씨의 경우는 과거 행적과 보험사의 추정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경찰도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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