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곡물상 급사 출신 ‘조선의 구두왕’…박덕유의 인생유전
조선시대 소가죽을 가공해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갖바치라고 했다. ‘백정’과 같은 천민 대접을 받았다. 구한말 단발, 양복이 소개되면서 서양식 신발(洋靴)인 구두도 함께 들어왔다. 양반, 상놈 구별없이 구두를 신는 시대가 온 것이다.
조선 사람이 연 최초의 구두가게는 1898년 황토현(지금의 세종로사거리 부근)에 이규익이 낸 것이라고 한다. 이 상점은 두어 해 영업하다가 문 닫았는데, 조선의 ‘구두왕’으로 알려진 박덕유(朴德裕)가 인수해 30년 넘게 운영했다. 박덕유는 성공한 기업가로 여러 차례 신문에 등장한다. 매일신보(1913년 10월8일)엔 실크햇에 양복 차림 사진과 함께 ‘경성대사동 양화점점주 박덕유군’ 소개 기사가 실렸다. 대사(大寺)동은 원각사가 있던 곳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지금의 관훈동이다. 매일신보(1917년3월3일)에 따르면, 박덕유가 양화업계에 뛰어든 것은 1905년이다. 10여년 지나자 직원 60명을 거느린 구두공장 사장으로 급성장했다. 그 옛날, 일요일엔 휴업하고 직원들이 교회에 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박덕유는 줄곧 이 분야에 매진해 1930년대엔 신설동에 고무공장까지 운영하면서 종업원 100여명을 거느린 기업가로 성장했다.
◇실크해트 쓴 신사가 구두 가리키는 사진, 20년 넘게 같은 광고
박덕유는 광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체득한 선구자였다. 매일신보는 박덕유가 신문광고 효과를 일찌감치 확신한 기업인이었다고 소개한다. ‘냉소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씨는 견고한 자신력을 가지고 더욱 광고를 이용한 결과 각지에서 주문이 답지하며 상점이 더욱 번창하였더라’고 했다.
그는 개업 초창기부터 당시 뉴미디어였던 신문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실크해트를 쓴 신사가 구두를 가리키고 있는 광고를 조선, 동아일보에 꾸준히 실었다. 박덕유는 ‘저희 집 광고는 아시다시피 언제든지 한 모양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경향을 물론하고 문구는 볼 것 없이 그림만 보면 누구라도 저의 집 광고인 줄을 다 알 줄 압니다. 그래서 지금은 양화를 신는 이로는 저희 집을 모르는 이가 없을만치 되었다고 생각이 되고 보니…’라고 말할 만큼 광고의 연속성을 고집했다.
물론 박덕유가 성공비결로 꼽은 것은 광고뿐 아니라 품질 관리와 신용이었다. 종업원이 대충 만든 구두는 손실을 생각하지 않고 화로에 던져버리고 불량품을 팔지 않았다.
◇'조선 양화계의 대왕’
신문에 소개된 그의 이력은 드라마틱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두살부터 곡물상 사환으로 10여년 일한 끝에 스물다섯살 때 스스로 곡물장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곡물을 실은 배가 침몰하면서 빈털터리가 됐다. 경부선 철도부설 보호 순검으로 월급 20원을 받으면서 일했는데, 그나마 일본이 철도부설권을 인수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로 전전하다 황토현의 구두가게에서 한달동안 수선공으로 견습생활을 했다. 그리고 마흔살 때 관훈동에 구두수전점을 냈다. 두달치 임금에 불과한 40원으로 시작한 가게였다. 이듬해 친구 둘과 동업으로 양화점을 시작했지만 신통찮았던 모양이다. 1년만에 동업자들은 빠져나가고 박덕유 혼자 가게를 꾸리게 됐다. 그렇게 18년이 흐른 뒤 박덕유는 7,8만원의 대상인이 됐다. 박덕유는 7남1녀를 뒀고, 중앙예배당의 중진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박덕유는 서른살 될 무렵까지 일자무식이었다고 한다. 순검시절 글을 배워보려고 늘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품고 다녀 ‘가슴속에 책 품은 순검’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상 ‘사업성공자열전’16 제화로 성공 박덕유씨, 동아일보 1927년1월18일)
박덕유는 예순여섯살인 1936년(매일신보 5월30일)에도 인터뷰에 등장했다. 여전히 현역이었다. 구두 말고도 청년화, 농구화도 직접 개발해 연 10만족(足)씩 팔린다고 했다. 박덕유 양화점과 고무공장, 제화점이 광복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불명확하다. 한국 제화의 초창기 역사를 주름잡은 ‘조선의 구두왕’ 이야기였다.
◇참고자료
경성대사동 양화점점주 박덕유군, 매일신보, 1913년10월8일
老鋪박덕유양화점, 매일신보 1917년3월3일
‘사업성공자열전’16 제화로 성공 박덕유씨, 동아일보 1927년1월18일
최지혜,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혜화11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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