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그에게 최고의 재능을 줬지만 그에 걸맞는 몸은 주지 않았다[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투수가 결국 마운드를 떠난다.
올시즌 마운드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워싱턴 내셔널스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소식이 8월 25일(한국시간) 드디어 전해졌다. 복귀가 아닌 팬들의 곁을 떠날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 아직 구단과 선수 모두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스트라스버그는 오는 9월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 때 최고의 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였지만 초라하고 씁쓸한 마지막을 맞게 됐다. 스트라스버그는 4년째 부상에 시달렸고 결국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계약 기간을 3년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은퇴를 결심했다. 하필 새로 맺은 7년 2억4,500만 달러 계약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부상으로 쓰러지며 '먹튀'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하지만 스트라스버그는 그저 '먹튀'라는 한 단어로 매도당할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워싱턴 내셔널스 구단을 상징하는 스타였고 역대급 재능을 가진 기대주였으며 비록 기대를 모두 다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커리어를 쌓았다.
1988년생 우완 스트라스버그는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워싱턴에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샌디에이고 주립대 출신의 스트라스버그는 '역대 최고의 대학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을 포함해 '엑스포스-내셔널스 프랜차이즈' 최초의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였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 지명을 받은 라이언 짐머맨(은퇴)이 '워싱턴 내셔널스' 구단의 최초 프랜차이즈 선수였다면 스트라스버그는 연고 이전 전부터 '약팀의 대명사' 중 하나였던 구단이 수십 년 간 이어진 오명을 벗고 새롭게 도약하는 시발점으로 삼은 선수였다.
워싱턴은 2009년 스트라스버그, 2010년 브라이스 하퍼를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하며 도약을 준비했다. 그리고 스트라스버그의 첫 풀타임 시즌이자 하퍼의 데뷔 시즌인 2012년, 연고이전 후 처음이자 엑스포스-내셔널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2번째로 지구 우승,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지구 우승은 파업으로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않은 1994년 이후 2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은 1981년 이후 2번째).
스트라스버그는 특별한 투수였다. 최고 시속 100마일 이상의 어마어마한 강속구와 최고 수준의 커브, 뛰어난 체인지업까지 구사했다. 공이 빠른 투수면서도 안정적인 제구력을 가졌고 커맨드까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9이닝 당 10개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파워피처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보는 재미'까지 있는 투수였다.
다만 늘 건강이 문제였다. 2010년 데뷔했지만 데뷔시즌부터 부상을 당했고 토미존 수술까지 받은 스트라스버그는 2012년에야 처음으로 풀타임 빅리거로 뛰었다. 규정이닝을 처음 소화한 것은 2013년. 2014년 처음으로 200이닝 이상을 투구했지만 2015-2016시즌은 목, 등, 팔꿈치, 사근 등 다양한 부상에 시달리며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2017시즌 다시 규정이닝을 채운 스트라스버그는 2018시즌에는 어깨 문제를 겪으며 또 규정이닝 미달에 그쳤다.
데뷔 첫 9시즌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시즌이 단 2번(2012, 2014) 뿐이었던 스트라스버그는 2019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33경기 209이닝, 18승 6패,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내셔널리그 최다이닝, 최다승 투수가 됐고 팀의 프랜차이즈 첫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월드시리즈 맹활약으로 월드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
비록 부상이 발목을 잡았지만 스트라스버그는 '건강만 하다면 성적은 보장되는' 투수였다. 2010-2019시즌 10년 동안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 2018년의 3.74였다. 데뷔 첫 10년 동안 기록한 성적은 239경기 1,438.2이닝, 112승 58패, 평균자책점 3.17, fWAR 36.6. 스트라스버그는 해당기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3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뒀고 투수 중에서 8번째로 높은 fWAR를 기록했다. 9이닝 당 탈삼진 10.6개는 해당기간 1,000이닝 이상을 투구한 89명의 투수 중 4위(1위 다르빗슈 유, 2위 크리스 세일, 3위 맥스 슈어저)의 기록이었다.
역대급 재능으로 기대를 모았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를 거의 충족시키는 활약을 펼쳤다. 팀의 창단 첫 우승을 견인하며 구단의 '장기 계획'도 결국 성공으로 이끌었다. 우승시즌 직전 겨울 하퍼와 결별한 워싱턴은 스트라스버그를 홀대하지 않았다. 스트라스버그가 커리어 내내 건강 문제에 시달린 것을 알면서도 그와 7년 2억4,500만 달러 대형 FA 계약을 맺었다. '전 소속팀'에 성적을 안겨주고 정작 거액을 쏟아부은 '새 팀'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많은 '먹튀' 선수들과는 다소 경우가 달랐다.
하지만 우승 시즌에 마지막 불꽃을 모두 태운 듯 스트라스버그는 새 계약 후 계속 부상에 시달렸고 한 번도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계약기간 절반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은퇴를 결심했다. 스트라스버그의 커리어가 끝난 것은 사실상 31세 시즌이던 2020년.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받았던 특급 투수의 커리어가 끝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스트라스버그에게 재능을 준 신은 그에게 그 재능을 오래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몸은 주지 않았다.
스트라스버그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떠오르는 현역 선수가 있다. 바로 올해 뉴욕 양키스의 '캡틴'이 된 애런 저지다. 대단한 재능을 가졌지만 건강 문제가 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소속팀이 '프랜차이즈 스타의 상징성'과 지난 활약에 대한 인정으로 대형 FA 계약을 안겨준 것까지 닮았다. 그 대형 계약을 31세 시즌을 앞두고 맺은 것까지도 묘하게 일치한다.
리그를 지배하는 거포면서도 정교함, 빠른 발, 준수한 수비 능력까지 두루 갖춘 저지는 매년 발목을 잡은 부상 탓에 데뷔 첫 7시즌 동안 규정타석을 3번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그리고 9년 3억6,000만 달러의 역대 최고 연평균 금액 FA 계약 첫 해인 올시즌 또 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규정타석 소화에 실패했다. 스트라스버그처럼 아예 시즌 내내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 결장한 것은 아니지만 부상에 대한 위험성이 누구보다 큰 선수다. 30대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 부상 위험도는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스트라스버그는 충분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마운드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과연 '닮은꼴'인 저지는 어떨까. 저지의 새 계약도 이제 막 시작됐다.(자료사진=위부터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애런 저지)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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