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간부도 예외없이 질책·해임…'영원한 신임' 없는 김정은식 인사
군부 2인자 박정천도 해임 뒤 복귀…견제·단속으로 길들여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신임을 받던 김덕훈 내각총리가 최근 강한 질책을 받으면서 내각을 향한 대대적인 사정 국면이 예고됐다. 한 때 '2인자'에 가깝다고 평가받던 핵심 간부까지 예외없이 질책하고 벌을 내리는 '김정은식 인사'가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가다.
김 총비서는 지난 21일 침수된 평안남도 안석간석지를 둘러보면서 경제사령부인 내각과 책임자인 김 총리를 겨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김 총리가 안석간석지 논 침수 보고를 받고도 '관조적인 태도'로 현장을 한 두 번 돌아보고는 부총리를 보냈을 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 총비서는 "나라의 경제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다", "일꾼들의 무책임성과 무규율성이 난무하게 된 데는 내각총리의 무맥한 사업태도와 비뚤어진 관점에도 단단히 문제가 있다" 등으로 김 총리를 향해 고강도 비난을 가했다.
김 총비서가 간부들의 태도를 지적한 적은 있지만 주민들도 볼 수 있는 매체를 통해 구체적으로 잘못된 점을 언급하며 거칠게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김 총리는 김 총비서를 대신해 경제 현장 시찰에 나서며 한 때 '2인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김 총리는 지난 2020년 8월 내각총리에 임명돼 북한 권력의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하면서 김 총비서에게 꾸준히 신임을 받아왔다. 특히 올해 2월 진행된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 체육경기에서 열성적으로 응원하던 김 총리를 김 총비서가 파안대소하며 지켜보던 장면이 두 사람 사이 친밀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이번에 김 내각총리를 질책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적 검토'라는 고강도 검열까지 지시했다. 이후 김 총리가 태국 수상으로 선출된 세타 타위신에게 24일 축전을 보낸 것이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됐으나 이는 국가 간의 통상적인 서한 발송이지 총리로서의 정상적 활동으로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김 총리는 큰 질책을 받은 이후 이뤄진 김 총비서의 경제 분야 공개활동인 금성트랙터공장 현지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직무에서 거리를 두고 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김 총비서의 신임을 받다가 한 순간 몰락하는 사례는 최근 복귀가 확인된 박정천 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박정천도 권력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군부 최고 자리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을 겸하며 김 총비서의 신임을 받던 인물이다.
박정천은 북한이 지난 2021년 10월 당 창건 76주년을 계기로 처음 개최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김 총비서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으며 전람회장엔 김 총비서와 박정천이 마치 가족사진처럼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전람회장에서 공개된 무기들에 대한 박정천의 공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김 총비서의 신임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는 작년 4월 조선인민군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땐 북한군 내 최고계급인 '원수'로 진급하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1월 당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구체적인 사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 해임됐었다. 이후 7개월 여만인 지난 3~5일 김 총비서의 군수공장 현지지도를 수행하고 며칠 뒤 열린 당 중앙군사위 8기 7차 확대회의에도 참가해 복귀를 암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위를 받았는지 북한이 직접 밝히진 않았지만 최근 김 총비서가 군수부문에 관심을 보이는 시점에 박정천이 복귀한 점으로 보아 군수와 관련된 중책을 맡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렇듯 아낌없이 신임을 보낸 간부들까지 질책과 해임, 재기용을 반복하는 것은 다른 간부들에게도 '영원한 신임은 없다'는 경각심을 주고 지속적으로 견제, 관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문책성 인사를 통해 내부에서 제기되는 각종 불만을 잠재우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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