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류재준 "제 음악,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는 계기됐으면"[문화人터뷰]

박주연 기자 2023. 8.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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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류재준. (사진=국립합창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굶어죽고,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어요. 그걸 우리가 크게 신경 안 쓰는 이유는 딱 하나잖아요. 우리와 관계된 일이 아니라는 거죠."

류재준(53)은 클래식계에서 보기 드문 행동하는 작곡가다. 2013년 '난파음악상'을 거부했고, 용산 참사, 세월호 등 사회적 아픔을 녹여낸 작품들을 발표하며 깊은 울림을 줬다. 2015년 폴란드 정부의 1급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수훈한 그는 한국보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더욱 명성이 높은 음악인이기도 하다.

류재준은 서울대 음대와 크라코프 펜데레츠키 음악원에서 작곡가 강석희,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2006년 폴란드 라보라토리움 현대음악제 위촉으로 발표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유럽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08년 폴란드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음악제에서 '진혼교향곡'으로 전 관중에게 기립박수를 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독일·영국·핀란드·폴란드 등 쟁쟁한 유럽 클래식계가 류재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류재준은 핀란드 난탈리 음악제,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 상주 작곡가로, 2011·2012년에는 폴란드 고주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작곡가로 활동했다.

작곡가 류재준. (사진=국립합창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17년, 류재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자신이 7년째 예술감독으로 있던 '서울국제음악제'가 한국문화예술위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같은해 10월에는 림프종 진단까지 받았다.

"몸도 안 좋고, 여러가지 상황이 좋지 않았죠. 앞으로 작곡가로서 계속해 곡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때 '미사 솔렘니스(장엄미사)'를 생각했어요." 장엄미사는 가톨릭 교회 음악의 최정점으로 꼽힌다. 베토벤 등 대부분의 명작곡가들이 평생에 단 한번, 미사 솔렘니스를 썼다.

류재준이 죽음의 문턱 앞에서 써내려간 '장엄미사'가 6년만에 세상에 공개된다. 오는 31일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에서 합창계 거장 윤의중의 지휘로 국립합창단, 시흥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이명주, 알토 김정미, 테너 국윤종, 베이스 바리톤 김재일 등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장엄미사를 세계 초연한다.

류재준은 이 작품에 대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헌정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작곡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가 터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나고, 미얀마 사태가 벌어지고, 사회운동가들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보며 느끼는 게 많았어요. 미사 솔렘니스를 쓰면서 바란 것은 하나였어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며 우리가 모르는 비극에 대해 한 번이라도 눈을 돌려 살펴보고,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는 "사람들은 영웅을 찬양하지만 사실 제일 고생한 건 그 사람의 가족들이고, 그중에서도 어머니"라며 "자식들 전쟁터에 보내는 어머니들의 슬픔, 이상 고온과 재해에 시달리는 암담함에 자식을 남겨두는 어머니들의 아픔이 작품의 원동력이 됐다"고 소개했다.

작곡가 류재준. (사진=국립합창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류재준은 15년째 서울국제음악제를 이끌고 있다. 2017년 예술위 지원에서 탈락하고, 암 투병을 하고, 코로나의 터널까지 거쳐오며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재까지 털어가며 애정을 쏟고 있다. 이번 미사 솔렘니스로 받는 작품료도 서울국제음악제에 투입된다.

서울국제음악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류재준은 2010년에 앙상블 오푸스를 창단했고, 이 멤버들이 지금 서울국제음악제의 핵심 멤버들로 성장했다. 올해는 세계적인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를 비롯해 사무엘 윤, 국윤종, 이명주 등 300명 안팎의 세계적 음악인들이 총출동, 오는 10월 나흘간 공연을 갖는다.

류재준은 자신이 음악회에 애정을 쏟는 이유에 대해 "은사인 펜데레츠키 선생님은 '한 나라의 국격을 말해주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음악계에서는 페스티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단순하게 페스티벌을 통해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문화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클래식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에 쏠려있어요. 오케스트라 등 전반적 수준이 높아지려면 이런 악기 외에도 트럼펫 등 관악기에도 자꾸 기회를 주고, 좋은 연주자들을 소개해야 해요. 좋은 연주자들을 무대로 올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한국인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줘야죠."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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