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0대존’ 등장… “너희도 당해봐” vs “망하려고 환장했나”
“20대 오지 마세요” 논란
세대 갈등으로 비화
“20대 대학생과 직장인 출입을 금합니다.”
한 카페가 이런 안내문을 붙여 화제가 됐다. 이른바 ‘No20대존(이하 노20대존)’. 조작 논란도 있지만, 이 문제는 “망하려고 환장했냐”는 20대와 “너희도 한번 당해보라”는 노20대, 자영업자로 편이 극명하게 나뉘어 세대 전쟁으로 번졌다. 20대가 많이 찾는 서울 홍대 앞에서도 “30대 이상만 출입 가능합니다”라고 써놓은 술집이 최근 2호점을 열었다.
“홍대에서 장사를 오래 했는데 이 근처 클럽엔 30대가 들어갈 수 없잖아요. 사장님이 그런 이상한 규칙 같은 거에 화가 나서 ‘우리도 30대 이상만 받자’고 한 거예요.”
지난 22일 저녁 이 술집 1·2호점은 만석이었다. 20대처럼 보이면 ‘진짜로’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했다.
◇20대는 정중히 거절합니다
이달 초 한 자영업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노20대존’ 카페 등장 소식은 자영업자의 환호를 받았다. 올여름 역대 최악 폭염을 겪으면서, 늘어난 20대 카공족(카페 공부족) 때문에 골치를 썩는 카페 사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선 ‘카공족 빨리 내보내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이용 시간 제한, 와이파이 차단, 콘센트 없애기, 에어컨 온도 낮추기 등이다.
실제 테이블이 네 개뿐인 한 용산의 카페 계산대 앞엔 2~3년 전부터 ‘이용 시간은 1시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한 손님은 “계산하려다가 어이가 없어서 그냥 나왔다. 장사 안 하려나 보다”라고 했다. 마포의 한 카페도 창가 쪽 좌석엔 “노트북, 핸드폰 사용 금지, 대화를 하세요”라고 돼 있다. 과제 행위를 금지한다며 “저희 매장은 실습실이 아닙니다”라고 공지한 가게도 있다. 한 카페 직원은 “한없이 앉아 있는 손님들 때문에 특단 조치를 한 것”이라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오죽하면 이러겠냐”며 노20대존을 지지하는 편이다. 올여름 40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카페에서 9시간을 머문 20대와, 음료 두 잔 주문하고 프린터까지 연결해 사용하려던 손님 일화는 뉴스에도 등장했다. 그래서 노20대존을 선언한 카페에 열광한 것이다. 한 네티즌은 “이러다가 노휴먼존까지 나올 판”이라고 했다.
◇“왜 우리가 눈치 봐야 하나”
서울 동교동 한 술집 출입구에는 “30세부터 입장이 가능하십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곳은 옛 추억의 홍대를 그리워하는 기성세대분들의 아지트입니다”라는 부연 설명도 붙여놨다. 인터넷에서도 “예약하고 오셔도 20대는 입장이 안 된다”고 공지했다.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장사가 잘돼 올해 1월 바로 앞에 2호점을 냈다. 마찬가지로 20대는 출입이 안 된다.
내부에선 80년부터 2000년대 초 풍미했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복고풍 술집이다. 한 50대 손님은 “소문 듣고 홍대 구경도 할 겸 친구들이랑 와봤다”며 “홍대역에서 걸어오면서 20대와 외국인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가게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좋아하는 음악 듣고 오랜만에 거하게 먹었다”고 말했다. 이곳에 다녀간 이들의 후기 중에서도 “20대에게 복수했다” “눈치 보여서 못 들어가는 술집이 많은데 너무 감사하다” “쾌감을 느낀다” 같은 글이 눈에 띈다.
노20대존이 생겨나는 요인 중 하나는 일부 민폐 고객이지만, 세대 갈라치기에 대한 역발상이기도 하다. 인기 있는 동네에 생긴 일부 와인바, 위스키바 같은 술집에서 40대 이상의 출입을 거부하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과거 ‘40대는 오지 마세요’ ‘50대도 오지 마세요’라고 한 술집과 캠핑장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노4050′을 적어놓진 않지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늘 예약이 다 찼습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핑계를 대서 내쫓는 것. 한 40대 네티즌은 “가게가 텅텅 비었는데도 못 들어가게 하더라”며 “분위기 한번 내려다가 연달아 세 번 입구 컷을 당해 기분을 잡쳤다. 겨우 한 곳에 들어갔는데 2층 가장 구석에 자리를 내주더라”고 했다. 이런 경험담은 수두룩했다.
◇노존, 세대 갈등 조장
노존의 시작은 노키즈존이다. 영유아·어린이의 출입을 제한하는 음식점, 카페 등이다. 현재 전국에서 500여 매장이 노키즈를 달고 영업 중이다. 이 단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된 2010년대 초반부터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수년 전 강원도에 문을 연 한 호텔은 라이브러리, 수영장 등 내부 시설이 노키즈존이다. 자영업자들은 “애들이 뭘 하든 제지하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아이가 다치거나 가게 집기를 망가뜨려도 전부 가게 책임으로 돌리니 욕을 먹어도 노키즈존이 속 편하다”고 말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봐도 “주인 자유”라는 찬성 의견이 70%가 넘었다.
그러나 명백한 차별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여전하다. 노키즈존이 진화해서 ‘노시니어존(60세 이상 출입 금지)’ ‘노50대존’ ‘노중학생존’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커피숍에선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을 제한한다”는 문구와 함께 “안내견을 환영합니다”라고 써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카페 사장은 “카페 5곳을 운영하지만 모두 50대 출입 금지”라며 “반말은 기본이고, 여덟 명 오면 네 잔만 시키고 고구마 등 간식 가져와서 펼쳐놓고 먹는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요즘 50대, 60대가 얼마나 젊은데, 그건 노인 혐오다”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다. 어르신들 낄낄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 좀 하시라” 등으로 갈려 갑론을박을 벌였다.
◇유엔도, 인권위도 안 된다는데
노존에 대한 반대 의견 중에는 나이를 기준으로 출입을 막는 건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나쁜 예라는 의견이 많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201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은 사회적 배제, 편견 또는 차별을 받지 않도록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아동에 대한 관용이 줄어듦에 따라 아동 인권 보호의 원칙을 밝힌 것이다. 미국 CNN은 지난 6월 한국의 노키즈존을 보도하며 “카페와 식당에서 아이들을 막는 것은 출산 장려에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얼마 전부터 유명 음식점이 유모차를 금지해 논란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7년 노키즈존 영업장에 대해 “13세 이하 아동의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 행위”라고 권고했다. 인권위의 이런 의견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9월 제주시 한 식당이 9세 아동의 출입을 막자 “차별이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강제할 법이 없어 권고 수준에 그쳤다. 이에 따라 제주도의회도 올해 노키즈존 금지 조례를 추진했다. 그러나 반발이 커서 심사를 보류했다. 국회에서도 아동 차별 실태 조사 등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인권위 제주출장소 안효철 소장은 “나이로 출입을 금지하다 보면 대체 누가 상업 시설을 이용하겠냐”며 “계속 차별하고 배제하고 분리하고 거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재고하거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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