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조현병 환자가 나의 이웃이어도 괜찮을까
760쪽 분량인 E. 풀러 토리의 ‘조현병의 모든 것’(심심)을 집어 든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론 파워스가 쓴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를 감동적으로 읽은 뒤 이 병을 더 알고 싶었다.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 사고를 여러 차례 기사로 접하는 동안 과연 그들을 내 이웃으로 둬도 괜찮을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이 병은 곧잘 여러 가지 상징이나 비유에 동원되는데 그게 얼마나 적절한지도 궁금했다.
그런 정도의 의문을 품은, 전문적 의학 지식이 없는 교양 독자가 읽기에 좋은 책이었느냐. 그랬다. 조현병과 가까이 있지 않은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어려운 용어 없이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되어 있고, 복지 서비스, 개인의 자유, 폭력, 현대사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사는 환자 가족들의 삶을 상상하거나,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지 같은 문제를 고민하느라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여러 번 멈춰야 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어떤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현대 의학은 이 병의 원인조차 제대로 모른다. 환자의 내면은 나의 이해 밖이다.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 헛것을 보고 주인 없는 목소리에 시달리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이 병이 지닌 모순과 잔인함을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이 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의 모순과 잔인함에 대해서는 조금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조현병을 얼마나 많이 알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이 병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많이 알게 됐다고. “조현병 환자를 이웃으로 둬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이제 몹시 투박하게 들린다. 이미 내 이웃 중에, 지인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한사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 100명 중 1명꼴로 조현병을 앓는다고 한다. 그렇게 흔한 질환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민이 20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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