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은 훈련… ‘감정’ 읽어주는만큼 ‘도덕’도 가르쳐야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베른하르트 부엡 지음|유영미 옮김|뜨인돌|164쪽|1만2000원
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왕수민 옮김|프시케의 숲|572쪽|2만4000원
“교사는 교사로서의 권위를 수호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무례함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이 빈정거리는 말투를 쓰면 그 일을 학교 지도부에서 공론화해야 합니다. 모든 교사는 존경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 시스템과 규율을 통해 그 권리를 못 박아야 합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교권 보호가 이슈로 떠오른 한국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 출간돼 독일 사회에 ‘자유방임 교육’ 대(對) ‘엄격한 교육’ 논쟁을 불러일으킨 ‘왜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가’의 한 구절이다. 원제는 ‘Lob der Disziplin’(규율에 대한 칭찬). 저자 베른하르트 부엡은 엄격한 교육을 토대로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유럽의 명문, 살렘 학교 교장이다.
◇'감정’보다 ‘도덕’을 교육하라
독일의 교육 현실은 많은 측면에서 한국과 닮았다. 현재의 한국 교육이 군사정권 등 권위주의 시대에 인권을 억눌렀던 반작용으로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처럼, 독일 역시 나치 치하에서 ‘복종’을 교육 목표로 선언했던 아픈 과거 때문에 오히려 탈권위와 자유방임으로 치달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감정을 읽어주는 육아법이 유행하듯, 전후(戰後) 독일에서도 저자가 ‘교육의 위험한 심리학화(化)’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났다. 아이가 특별한 행동을 하면 부모와 교사들이 자신들의 양육법을 돌아보지 않고 성급하게 정신과나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다는 것. 그 결과 “노력 부족, 공격적인 태도, 집중력 장애는 다양한 심리학파가 만들어 낸 심리 모델을 통해 설명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이상 아이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주의가 산만한 아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심리적 진단을 받았고, 공부를 거부하는 아이는 발견되지 않은 천재성이 있는 것으로, 다른 아이를 놀리는 것은 나약한 자아나 유년기의 애정 결핍에서 오는 현상으로 결론이 났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덕적 주체로서의 아이들에게 주목해야 하며, 그들의 행동을 너무 성급하게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고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훈련할 수 있는 ‘용기’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교육의 본질은 ‘훈련’이다. “교육하려는 사람은 아이들을 훈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훈련은 교육학의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훈련에는 복종, 포기, 절제, 인내 등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 저자는 훈련의 마지막 열매는 ‘자기훈련(self-discipline)’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가 자유를 독립성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만, 자유란 자신을 수없이 극복해 ‘자기결정’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학생과 교사는 파트너 관계가 아니다”라며 교사의 권위를 명확히 할 것을 강조하지만, 체벌하거나 사랑과 관심을 박탈해 굴욕감을 주는 행위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선을 긋는다. 다만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를 시험할 기회를 허락하고, 좌절의 경험까지도 허락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과잉 보호를 경계한다. “우리는 자꾸 관용, 사랑, 배려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엄하게 교육하다가 아이들의 마음이 닫힐까 봐 두려워하고, 훈련이 아이들의 마음에 부담이 될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엄한 태도가 오히려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고, 너무 배려해 주고 과잉 보호하는 것이 아이들을 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잉 보호가 망가뜨린 대학
과보호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와 교육권 전문 변호사 그레그 루키아노프가 함께 쓴 ‘나쁜 교육’은 부모의 ‘정서적 과보호’를 받고 자란 Z세대를 다룬다. 원제는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미국인의 마음 오냐오냐하기). 실패, 모욕 등을 겪어본 적 없는 학생들이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정신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내용들로부터 학교가 자신들을 보호해주길 바란다는 것. 그 결과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연사(演士)들의 초청강연을 보이콧하거나, 교수를 공격하는 등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궁극의 체육관’이 되어야 하는 대학의 다양성과 자유를 침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책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 시대 교육의 사명은 아이들에게 가치와 덕목들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라는 부엡의 말과 “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지 않다. 교육이란 모름지기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 뜻을 두어야 한다”는 하이트·루키아노프의 말 사이 어딘가에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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