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미스 오의 힘은 지금도 페미니즘이다

오진영 작가·번역가 2023. 8.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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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 지지했던 페미니즘… 요즘은 ‘약자 인권 옹호’ 본질 잃어
자기편이면 ‘야만’도 방조… 건전한 상식의 힘 되찾아야
2021년 7월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중고책 서점 외벽에 그려졌던 '쥴리 벽화'. 서점을 운영하는 해당 건물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연상시키는 내용의 벽화를 건물 외벽에 그렸다가 이날 관련 문구를 모두 지웠다./장련성 기자

화제의 드라마 ‘무빙’ 9회에서 안기부 직원 이미현(한효주)은 자신을 ‘미스 리’라고 부르는 상사에게 “이 주사, 아니면 이미현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요구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한때 내게도 미스 오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서른두 살에 어느 기관에 공관장 비서로 취직했을 때였다. 공관의 중년 남자 상사들은 포르투갈어 통·번역 일을 하러 온 30대 기혼녀인 나를 미스 오라고 불렀다. 미스 오라는 호칭이 자존심 상했지만 싫다는 티를 내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2년 남짓 그 직장을 다니는 동안 한번도 드라마 속 한효주처럼 ‘미스 오 말고 오진영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해보지 못했다.

30대 초반에 겪은 한국 사회 직장 문화가 그랬고 내가 20대, 10대일 때는 더 심했다. 그 시절에 성장한 내 또래 여자들은 여성 인권 운동과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거나 적어도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다.

그 후로 세상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약자의 인권 옹호라는 본질을 잃었다. 2020년에 한 여자 대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내걸고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기어코 포기시켰을 때, 나는 더 이상은 페미니스트라는 명칭이 과거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용기를 의미하는 타이틀이 아님을 알았다.

휴머니즘과 합리성을 잃은 페미니즘을 어디다 쓸 것인가. 고무줄 끊어진 팬티만 못하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오세라비, 좁쌀한알)는 책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페미니즘은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가 되고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만 남을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줄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미스 오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페미니스트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 아내의 여성성을 모욕하는 인신 공격이 선을 넘었을 때였다.

남자 정치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의 여자에게 오물을 던지는 거야 새로울 게 없는 구태다. 내가 놀란 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김건희 여사 인신 모독에 대해서 여성 운동을 기반 삼아 출세한 소위 진보 정권의 여성 정치인들이 일제히 입 닫고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여성 이론으로 명성을 얻고 대학 연구 기금을 타먹고 책을 팔고 시민 단체 지원금을 받아온 진보 지식인들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모습이었다.

경력 위조나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비판할 수 있지만, 탬버린, 벽화가 나왔을 땐 최소한 여성 운동 경력 덕에 배지 단 사람들만이라도 ‘우리 이러면 안 된다’고 나서야 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지지했던 페미니즘 정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 일은 내가 ‘저 진보는 틀렸다!’ 라고 외치며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소셜미디어 싸움꾼 대열에 뛰어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는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사는 집을 습격해 생명을 앗아가려는 괴물(할로우)이 나온다. 할로우는 투명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모였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으로 할로우를 물리치고 집을 지키게 한 것은 주인공 제이크가 가진 ‘할로우를 알아보는 힘’이었다.

반대하는 정당의 대선 후보 아내를 공공연하게 인격 살인하는 자기편 야만을 방조했던 정치적 판단은 괴물과 다를 게 없다. 증오하는 대통령의 부친이 돌아가시자 ‘살을 날린 게 잘못 갔나’라며 조롱한 일간 신문 칼럼니스트도 사회의 생명을 좀먹는 괴물 같은 존재다. 괴물이 괴물임을 알아보고 그들은 틀렸으니 막아야 한다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건강한 상식의 기저에는 미스 오의 마음속에 살아있던 페미니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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