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일 축구의 결정적 차이
지난 20일 FIFA(국제축구연맹)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은 스페인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당 평균 관중이 3만명에 달했고, 대회 기간 동안 32억명(누적)이 FIFA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스페인과 잉글랜드가 붙은 결승 당일, 양 팀 벤치 사이에 한 일본인이 서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본인 심판 야마시타 요시미(37)였다. 그는 결승전 대기심으로 나섰다. 대기심은 주·부심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때 대신 투입하며, 선수 교체·추가 시간 공지 등도 맡는다. 엄연한 심판진이다. 경기 중 혹시 생길 수 있는 양 팀 코치진 갈등도 조율하면서 경기 흐름도 파악한다. 영어로는 ‘Fourth Official(네 번째 심판)’이라 부른다. 이날 심판진은 주·부심과 대기심, VAR(비디오 판독)실까지 9명으로 이뤄졌다. 야마시타는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일본인 여자 대기심 한 명이 무슨 대수냐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심판은 경기 흐름과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재판장’이다. 누가 심판이 되느냐가 승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야마시타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심판이다. 2022 카타르 남자 월드컵에서 역대 처음 여성 심판 6명이 포함됐는데, 그 중 하나였다. 그가 이번 결승 심판진에 포함됐다는 소식에 일본축구협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반겼다.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보도했다.
중요한 건 우연이 아니란 점이다. 일본축구협회는 1990~2000년대 축구 부흥을 위한 각종 목표를 세우고 ‘100년 안에 남자 월드컵 우승’ ‘연령별 여자 월드컵 항상 출전’을 비롯, ‘심판 인력을 늘리고 세계적 인재(심판)를 배출한다’를 포함시켰다. 승리를 위한 각종 인프라 구축에 치밀한 총력전을 펼친 셈이다. 작년 기준 일본축구협회 등록 심판 수는 26만7572명. 한국(2736명)과 차이가 크다.
여자 축구까지 뭐 그렇게 신경 써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 하지만 여러 종목에서 한국은 투자 없이 요행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가끔 난데 없이 특출한 선수들이 나와 구조적 한계를 가리곤 하지만 치밀한 전략으로 준비하는 일본과 비교하자면 허술한 구석이 넘친다. 더 답답한 건 결과가 안 좋으면 한계를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꼭 책임 공방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콜린 벨 여자 대표팀 감독이 이번 저조한 성적(조별리그 탈락)과 관련해 “WK리그(여자 실업축구)는 승부욕이 떨어진다”고 지적하자 곳곳에서 “벨 감독을 잘라야 한다”면서 아우성인 점이 꼭 그렇다. 벨 감독을 비호하려는 게 아니다. 축구에서도 여느 사회 문제처럼 희생양을 찾는데 골몰한 나머지 정작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놓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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