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00] 빛의 도시 파리
황금빛으로 밝혀지는 에펠탑과 센(Seine)강의 다리들, 빨간 카페의 채양과 물랭루주 조명은 대표적인 파리의 이미지다. ‘빛의 도시(La Ville Lumière)’라는 별명처럼 파리는 그 빛으로 인하여 매일매일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탄생한다. 새벽과 오전, 늦은 오후, 해질 무렵과 밤의 각기 다른 빛이 건물과 거리를 비추는 풍경은 다른 도시가 흉내 내기 어려운 연출이다. 심지어 비 오는 날 길거리나 광장의 바닥에 반사되는 빛조차 아름다운 곳이 파리다.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는 햇빛과 조명을 이렇게 자기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 빛을 흡수하는 멋진 배경이 있어야 한다. 즉 도시가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다른 도시의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는 기능을 위해서 설치되었다면, 파리의 가로등은 건물과 거리의 모습을 비추도록 섬세하게 배치되었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온화한 베이지색 건물에 가깝게 위치하고, 그 아름다운 윤곽을 투영할 수 있도록 작동한다. 그냥 흐르거나 퍼져서 분산되는 빛을 잡아서 예술적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다.
파리의 빛은 또한 르누아르, 모네, 뒤피와 같은 화가들이 화폭에 옮기려 했던 요소이자 소재이기도 하다. 이 화가들에게 빛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파리의 거리와 공원을 거닐며 관찰하고 작품의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어둠이 질 무렵 파리의 빛은 특히 아름답다. 인근 메트로(Metro) 입구의 꽃봉오리 등이 불을 밝히며 카페의 노란 조명과 싱코페이션(syncopation)을 이룬다. 여기에는 도시의 세련됨과 쓸쓸함, 낭만과 고독, 그리고 지성의 표정이 모두 담겨있다. 파리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 하루의 평균 식사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더 길다. 아마 식사를 하면서 은은히 변하는 빛을 즐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빛을 찬미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상은 파리지엔 스스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도시 곳곳에 투영되는 빛을 느끼고 감상하는 건 파리를 경험하는 근사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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