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청춘엔 사이다 한 잔… 영국엔 소주 한 잔

이태동 기자 2023. 8.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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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내수시장… 해외로 가는 K음료·술·아이스크림

롯데칠성음료가 최근 필리핀 펩시(PCPPI)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미 대주주(73.6%)였지만 공동 경영을 해오던 글로벌 펩시와 2년여 협상 끝에 인사는 물론 신규 사업 결정권까지 가져온 것이다. 롯데칠성이 필리핀 펩시를 탐낸 건 콜라 사업 때문만이 아니다. 펩시로 확보한 필리핀 영업망을 활용해 자사 브랜드인 밀키스, 칠성사이다, 레쓰비에다 심지어 ‘새로’ 같은 소주도 팔겠다는 것이다. 롯데칠성의 필리핀 공략 교두보로 확보한 셈이다. 롯데칠성은 그동안 해외 사업 비중이 10% 정도인 전형적인 내수 기업이었다. 하지만 동남아를 거점 삼아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필리핀은 열대 계절성 기후를 갖고 있어 음료 사업을 하기에 적합하고, 특히 인구 1억2000만명 중 젊은 세대 비중이 높아 탄산음료를 유독 선호한다”며 “필리핀을 발판 삼아 내년엔 해외 사업 비중을 40% 가까이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롯데칠성이 해외에 목을 매는 것은 한류 등을 활용하겠다는 차원만이 아니다. 지금 국내 시장은 저출산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식음료 등의 분야에서 갈수록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업계로서는 여간 위기가 아니다. 라면·스낵·만두에 이어 음료·술·아이스크림·김치 등이 일제히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는 데는 이런 절박감이 있다.

그래픽=이철원

◇앞으로가 더 무서운 시장 감소

국내 대표 내수 산업은 규모가 축소되거나 성장 정체에 빠져 있다. 2015년 시장 규모(매출)가 2조원까지 커졌던 아이스크림 업계가 대표적이다. 2021년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1조3570억원으로 2018년보다 20% 가까이 줄어들었다. 주류업계도 2018년 9조390억원에서 2021년 8조835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음료도 마찬가지다. 2018년 7070억원대였던 주스 시장은 2021년 6430억원대로 줄었다. 탄산, 액상차, 인삼·홍삼음료, 발효 음료까지 다 합쳐도 2020년 매출은 2018년 수준이다.

업계에선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구 감소 현상이 시장 축소를 더 부추길 것이라 보고 있다. 한국 주민등록 인구는 2018년 5183만명에서 2022년 5144만명으로 약 40만명 줄었다. 역대 최저이자 세계 최저인 출산율(0.78명)로 인해 인구 감소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스크림, 술, 김치 줄줄이 해외로 간다

위기 탈출을 위해 아이스크림 업계에선 빙그레가 빠르게 해외 사업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메로나가 상반기 해외에서 290억원어치 팔리며 빙그레 아이스크림 수출은 46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빙그레 해외 사업 비중은 2018년 5%대에서 지난해 10%까지 올랐다. 빙그레 주가가 최근 한달사이 4만3500원에서 5만7000원으로 31% 급등한 것도 해외 영업이 이끌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빙그레 관계자는 “해외에선 딸기, 코코넛, 피스타치오 맛 제품에 주력하는 등 현지화도 했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량이 점점 줄어드는 김치업계도 해외 진출로 대응하고 있다. 김치를 직접 담가 먹기보다 포장 김치를 사먹는 추세이지만 장기적으로 전체 김치 시장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대상은 김치 브랜드 이름을 종갓집에서 발음이 쉬운 종가로 통합하고 미국 업체를 인수해 현지 생산을 통해 김치 수출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수출액 7100만달러(940억원)는 2018년(3700만달러)보다 92% 늘어난 액수다.

하이트진로는 소주를 내세워 영국과 유럽을 개척 중이다. 소주 외에도 맥주, 와인 등을 판매하지만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엔 소주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소주의 영국 수출이 전년 대비 43% 늘어났고, 현지인 소비 비중은 77%로 나타나는 성과를 거뒀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소주가 자리 잡는다면 나중엔 더 다양한 제품으로 해외를 공략해 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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