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마나님 이거에 빠졌어요”…살림 거덜낸 ‘18세기 넷플릭스’ [Books]
세책 문화를 오래 연구해온 이민희 강원대 고전문학 전공 교수가 파리, 스톡홀름, 도쿄, 뉴욕, 리우데자네이루 등 세책점이 자리했던 주소지를 찾아가며 발품 팔아 쓴 귀한 결실인 ‘18세기 세책사’가 출간됐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구년을 보냈던 그는 18세기부터 성행했던 세계 세책의 현장을 취재하며 ‘이야기에 열광했던 인간’의 단면을 추적한다.
영국에서 최초 세책점이 등장한 건 1763년이었다. 30년도 지나지 않아 런던에서 영업하는 세책점은 25곳으로 늘었다. 당시만 해도 책은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출판물은 지식인과 남성의 독점물이었다. 그러나 책을 사보지 않고 빌려본다면 얘기가 달랐다.
독일에선 7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세책점이 성업했다. 베를린에만 독서 클럽 27곳이나 있었다. 독일 내 세책점은 책에서 소외됐던 여성들과 하인들의 ‘소설 공급처’였다.
1750년부터 1800년까지 독일에서 출판된 소설은 5000편이었다. 그중 4분의 3이 세책점을 통해 유통됐다. 책값은 지금의 5센트쯤 되는 1그로센. 그래서 세책점 소설은 ‘그로센 소설’로 불렸다. 20세기초 미국의 다임 소설(1다임=10센트)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에선 세책업자를 카시혼야(貸本屋)이라고 불렀다. 카시혼야는 대개 이동식 세책점을 운영했다. 특이하게도 일본 세책업자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점, 또 여성 카시혼야가 세책과 함께 ‘매춘’을 겸하기도 했다고 책은 전한다.
일본 세책 산업은 여성 카시혼야가 책을 갖고 이동해 빌려주는 식이었다. 이들은 남성에게서 ‘또 다른 요구’를 받기 쉬웠다. 그러나 서양식 책이 도입되면서 카시혼야의 등짐은 점차 무거워졌다. 이후 일본 세책점은 이동식이 아닌 위치가 고정된 가게로 변모했다.
문제는 세책에 중독된 양반집 안방마님들이 값비싼 장식품을 내다팔거나 심각한 경우 가산을 탕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이덕무는 이런 세태를 보면서 “언번전기(한글로 번역한 중국소설 또는 번안 작품)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선 세책 대신 싼값으로 책을 사보는 문화가 등장했다. 오니차란 도시의 시장에선 소책자와 팸플릿이 잘 팔렸는데 이곳에선 각종 싸구려 책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이를 ‘오니차 시장 문학’이라고 불렀다. ‘여자와 친구가 되는 방법’ ‘여자의 자존심은 남편’ ‘여성을 조심하라’와 같은 책이 인기를 끌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내 세책점은 1820년에 첫 등장했다. 별도로 만들어진 독서공간(열람실)을 보유한 세책점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세책은 책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생긴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고 저자는 쓴다. “세책 문화는 일반 독자가 출현해 만들어 낸 독서사의 진보이자 동서양 공동의 보편적 문화유산이다.”
책의 유통은 지식의 독점과 반비례했으며,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의 지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세책점, 커피 하우스, 독서 클럽, 살롱에서 책 한권을 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권 책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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