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K미술시장 잡아라…외국 갤러리들 잇따라 서울행
‘거대 미술장터’ 프리즈 서울 D-10
서울 화이트 큐브 옆엔 페로탕 갤러리
화이트 큐브 서울은 300m²(약 91평)의 면적으로 강남 도산대로 호림아트센터 1층에 위치한다. 9월 5일 시작하는 개관전은 ‘영혼의 형상’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으로 화이트 큐브가 자랑하는 작가 트레이시 에민과 한국의 이진주를 포함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화이트큐브는 아트딜러 제이 조플링이 런던에서 창립했으며,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YBA 작가들의 전시를 열며 함께 성장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YBA는 Young British Artists 의 준말로, 1990년대 세계 미술계 판도를 바꾸었던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의 당시 젊은 작가들을 가리킨다.
“그전부터 우리의 아시아 팀이 서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기 때문에 서울이 전세계에서 가장 세련되고 참여도가 높은 미술 시장 중 하나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서울 미술계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 매력이며, 작년 프리즈에서의 성공은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기로 한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조플링 CEO는 화이트 큐브가 다른 세계 굴지의 갤러리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로서 “예술 운동의 부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상업 화랑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동시대적인 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에서 전시, 출판물, 디지털 플랫폼 등의 퀄리티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관심 있는 한국 작가로 조플링 CEO는 단색화 대가 박서보를 뽑았다. 그는 “내가 깊이 존경하는 박서보 작가는 2018년부터 화이트 큐브의 대표 작가로서 여러 주요 전시를 진행했다. 다음 전시는 2024년에 뉴욕에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에 새로운 갤러리가 생기고 팀이 성장하면 한국의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더 많은 채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 청담동에도 여러 주요 외국 갤러리가 자리를 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글래드스톤 갤러리(Gladstone Gallery)는 프리즈 서울 전날에 96세의 세계적 인기 작가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을 개막할 예정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검은 바탕 위에 클로즈업된 꽃의 형상을 드라마틱하면서 미니멀하게 표현한 최신작들을 소개한다. 뉴욕에 본사를 둔 글래드스톤은 지난해 4월에 서울 갤러리를 오픈했다. 개관전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이었으며 대표 작가는 파레노 외에 우고 론디노네, 매튜 바니, 쉬린 네샤트 등이다.
한국 진출 전 10년 남짓 시장 연구
청담동 못지 않게 외국 갤러리들이 모이는 곳은 용산구 한남동이다. 뉴욕에 본사를 둔 갤러리 리만 머핀(Lehmann Maupin)은 삼청동에 문을 연지 4년 만인 지난해 3월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리만 머핀은 페이스 갤러리와 더불어 최초로 한국에 상설 전시 공간을 마련한 외국계 메이저 갤러리다. 대표 작가로 길버트&조지, 토니 아워슬러, 하이디 부허 등이 있다. 서도호, 이불 등 단색화 이후 세대의 세계적인 한국 작가들에 일찍이 주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최근에는 성능경 작가와의 협업을 발표한 바 있다.
한남동에 자리를 튼 또 다른 주요 갤러리는 2021년 10월 유엔빌리지 인근에 위치한 포트힐 빌딩에 서울 지점을 오픈한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이다. 1983년 오스트리아의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이 설립한 이 갤러리는 런던, 파리, 잘츠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개관전으로 독일의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개인전을 열어 큰 화제가 되었다.
한편 2021년 5월에는 뉴욕 기반 3대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는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가 리움미술관 인근 르 베이지 빌딩으로 서울 지점을 이전해서 활발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페이스는 대표 작가로 생존하는 최고 거장 중 하나인 데이비드 호크니, 키키 스미스 등이 있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요시토모 나라의 세라믹 작품 전시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세계 최대 갤러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Hauser&Wirth)는 프리즈 서울을 앞두고 지난 23일 따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하우저앤워스는 지난해 제1회 프리즈 서울에서 조지 콘도의 빨간 그림을 약 40억원에 파는 등 100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아트페어 개막 1시간 만에 팔아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에는 필립 거스턴과 루이스 부르주아 등 거장들의 작품을 앞세울 예정이다.
서울 지점은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하우저앤워스의 아시아 총괄 홍보 디렉터 타라 리앙은 “현재로서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한편 그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선 하우저앤워스를 처음 소개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갤러리의 실험성과 퀄리티를 적극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의 성과 여부에 따라 한국 시장으로의 본격 진출 여부를 고려하기 시작하리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해외 갤러리들은 지점 개설을 결정하기 전에 길게는 10년 남짓 한국에서 팀이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한국 시장에 대해 연구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이트 큐브의 아시아 총괄인 웬디 츄는 “2012년부터 홍콩 본사를 시작으로 가장 유망한 새로운 예술시장 중 하나인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에서 꾸준히 팀을 운영해 왔다.”라고 밝혔다.
페레스프로젝트를 설립한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 역시 2019년 아트부산 참가를 통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한국에서 활동해 왔다며 “10년 가까이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서울은 미술시장이 다양한 컬렉터들로 구성되어 탄탄하고 미술관 전시가 활발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우리 갤러리의 아시아 시장을 위한 활동을 받쳐주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베를린 기반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는 지난해 서울 신라호텔 내에 지점을 냈고, 지난 4월 삼청동으로 지점을 확장 이전했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페루 출신으로 표현주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파올로 살바도르의 개인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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