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대학 등록금이 되어준 ‘소 판 돈’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다행히 제값을 받고 소를 넘겨주었다. 이별을 아는지 슬픈 눈을 하고 서 있는 소를 애써 등지고 소 판 돈을 챙기고 있는 농부. 돈다발을 양말 속에 넣고 대님을 묶으면 은행금고처럼 안전하다. 물론 오늘 같은 날은 막걸리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쏜살같이 귀가해야 한다. 큰아이 대학 등록금을 낼 귀한 돈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70년대에는 대학을 ‘상아탑’이란 말 대신에 ‘우골탑’이라고도 불렀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유학 간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농촌에서는 농부도 소도 농사짓느라 등골이 휘었고, 때로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보물인 소를 팔기도 해야 했으니 우골탑이란 말도 과장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우시장에서 이 농부를 보았을 때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겨우 중학교 2학년인 늦둥이 막내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아버지는 막내의 대학 등록금에 쓰라며 암송아지 한 마리를 나의 몫으로 남기셨다. 잘 키워서 어미소가 되면 또 송아지를 낳을 테고, 그렇게 막내의 등록금을 해결해보라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해를 넘기지 못하고 송아지를 팔아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나에게 대학은 상아탑도 우골탑도 아닌,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우시장에서 정든 소 고삐를 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린 아들을 두고 가시며 애잔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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