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리듬형? 멜로디형? 아니 텍스트형 인간(MD칼럼)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평소처럼 레슨을 하러 연습실에 들어서는데 테이블 위 악보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설마… 오늘 내가 할 건 아니겠지?’
지난 칼럼에서 고백했지만, 나는 영화 <머니볼>의 OST ‘The Show’ 1절을 연습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다시 리듬과 코드 연습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저 악보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했다.
한참 수업을 하다 쉬는 시간을 가지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마저 내쉬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게 웬걸. 기타 선생님이 테이블 위에 있던 악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쳐봐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못 쳐요.”
“칠 수 있어요. 다 아는 코드예요.” 선생님은 시범을 보였다. 그제야 나는 악보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유메나라바도레호도요캇타데쇼오…’
“유메나라바? 꿈에서? 꿈이라면? 아니 왜 이렇게 써놨대. 한글로 이렇게 써놓으니까 더 못 읽겠네.” 혼잣말이었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듣자마자 한마디했다. “아니, 가사를 왜 보고 있어요? 코드를 봐야죠.” 내가 답했다. “가사가 궁금하잖아요.” “가사가 뭐가 중요해요. 코드를 보라고요.” “아니 선생님, 가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잖아요.” “코드를 보라고요. 코드를.” “가사를 알아야 치죠!”
기타 선생님에 따르면 나는 리듬 감각이 없는 편이다. 역시나 선생님에 따르면 리듬형 인간과 멜로디형 인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리듬형 인간은 확실히 아니니 멜로디형 인간에 가까운 건가. 아무튼 여기에 나는 텍스트형 인간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그렇다. 나는 오롯이 텍스트형 인간이다. 만화 책을 봐도 그림보다 글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길 가다가 어떤 간판이 눈에 띄었는데 내가 전혀 읽지 못하는 언어라면 그 사진을 찍어 친한 번역가 선배에게라도 물어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제품 사용설명서를 누가 보냐고 하는데, 내가 그 사용설명서를 보는 사람 중 하나다. 물론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만다. 명승고적지에 가서 안내판을 보느라 한참을 서 있는 일도 꽤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활자를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디서든 활자가 있다면 그것부터 읽고 본다.
이런 내게 격하게 공감해준 사람이 있다. “악보에서 당연히 가사를 먼저 보는 거 아냐? 내용은 알아야 할 거 아냐. 악보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가사인 걸 어떡해?” 나보다 먼저 기타를 배운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쉬고 있는) 북에디터 선배의 말이다. 이것도 북에디터 종특인가.
세계적 인지신경학자 메리언 울프에 따르면, 활자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은 사피엔스가 이룩한 성취 가운데 가장 많은 노력을 요하는 후천적 능력이다. 읽기란 단순하고 단일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개별적이고 복잡한 과정과 단계로 이루어진다.
캐나다 소설가 하워드 엥겔은 가벼운 뇌졸중 후유증으로 ‘실어증 없는 실독증’을 앓았다. 글자를 완벽하게 볼 수는 있으나 그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읽지는 못하지만 쓸 줄 안다는 것이 작가에게 위안이 될까. 만일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아무튼 가사가 코드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텍스트형 인간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연습실에 놓여 있던 악보는 요네즈 켄시의 노래 ‘레몬’이었다. 나의 일본어 수준은 20여 년 전 학교 다닐 때 교양 수업을 들은 정도지만, 일단 가사가 눈에 들어온 이상, 한글로 적힌 일어를 히라가나든 가타가나든 바꾸어놓고 사전을 찾아 그 뜻을 알아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결국 그날 레슨은 ‘가사 논쟁’으로 거의 진도를 거의 나가지 못했다. 이런 나 때문에 고뇌에 빠지는 선생님께는 죄송한 마음뿐.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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