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폭탄의 시대 선사하다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이런 영화를 두고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터스텔라’ 이후 놀란의 또 한번의 걸작인데, 놀란이야말로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훔쳐 영화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가혹한 형벌을 받아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혔지만 놀란은 대중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을 것이다.
놀란 감독,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
원작에 대한 해석 능력이 뛰어 났다는 것, 쉽게 말해 원작을 줄이고 늘이며, 몇 개의 에피소드를 합치거나 한 개를 몇 개로 나누거나 하는 과정에서 그럴듯한 윤색으로 원작을 재창작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해냈다는 것은 몇 가지 대목에서 추출돼 나온다. 예컨대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이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는 군복 재킷을 벗어 뒤에 서 있던 부관 케네스 니콜스(데인 드한)에게 집어 던지며 ‘세탁소에 맡기고 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원작에선 오펜하이머의 조수인 로버트 서버가 목격한 얘기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가 직접 언급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곧 오피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대령이 부관을 대하는 걸 보면 일개 물리학자를 어떻게 대할지 알겠군요.” 캐릭터들을 압축시킨 의미있는 윤색이다.
오펜하이머는 이론 물리학 뿐만 아니라 언어 면에서도 천재적이었던 바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는 친구이자 1941년 핵자기공명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데이빗 크럼홀츠)와 기차를 타고 학회를 가는 장면에서 언급시키거나(너는 네덜란드어까지 한단 말야?) 연인인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이 그와 섹스를 나누다가 책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시집을 갖고 와서는 그에게 그걸 읽게 하고는 그 발음을 들으며 다시 섹스를 계속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이야기의 질감이 너무 깊고 풍부해서 속수무책으로 그 내용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놀란은 이를 통해 인간은 역사 속에 있는 존재이며 과거란,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역설한다. 인간이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는 구속이 아니라 미래에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화두이자 적(敵)은 파시스트였다. 프랑코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이후 나치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향하게 된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에게 대항할 무기로 공산주의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 같은 이론 물리학자도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됐고, 이때의 행동들이 평생 그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인생을 옥죄게 된다. 그 과정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된 테마이기도 하다. 미국의 반공 이데올로기, 냉전의 국제 정치상황, 극우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이 일으킨 광풍의 시대가 이 천재에 대해 어떻게 마녀사냥을 벌였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건 꼭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역사 속 어디에서든 툭하면 벌어지는 일임을 역설한다.
“1945년 이래 마음 속에 폭탄 갖게 됐다”
핵 무기가 지닌 공포를 다룬 영화들은 많은 듯 많지 않다. 일반인들의 뇌리에는 사라졌지만 스탠리 크레이머가 1959년 연출한 ‘그날이 오면(On the Beach)같은 영화가 시초 격이었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 프레드 아스테어 등이 나왔다. 핵전쟁으로 북반구는 완전 파괴됐다. 잠수함을 타고 있어 이 사실을 몰랐던 함장과 대원들은 남반구의 중심인 호주 연안 해변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실을 알게 된다. 호주도 방사능 오염의 시간이 머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핵 공포에 아랑곳 없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파티를 즐긴다. 지구는 이제 곧 끝장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은 왓챠 같은 국내 OTT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은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한 때인데, 그럼에도 영화는 냉전의 끝이 공멸일 수 있다는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만들어 낸 ‘폭탄의 문화’ 현상 중 하나였던 셈이다.
지나친 비극은 곧바로 영화나 그림, 음악, 문학으로 표현되기 힘들다. 사람들의 심리적 내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9년은 서서히 상처를 씻어내기 시작한 때이다. 프랑스 알랭 레네의 명불허전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이 만들어졌던 때도 1959년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것이 1945년 8월 6일. 14년이 지나서야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셈이다. 프랑스 여배우 엘르(엠마누엘 뤼바)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건축가 루이(오카다 에이지)를 만나 짧은 사랑에 빠진다. 나치 점령 시절 독일군을 사랑했던 엘르는 전후 그의 처형 과정을 목격했던 상처를 지녔고 그런 아픔을 히로시마에 와서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두 연인은 정신적 상흔을 딛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의 아픔은 결코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원자폭탄을 만든 인물이 아니다. 그가 나중에 원자력 위원회 비밀정보 사용허가가 완전히 취소되는 등 기복을 겪었다는 얘기들도 먼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우리에게 폭탄의 시대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오펜하이머와 당대를 같이 했던 에드거 로렌스 닥터로우의 분석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 나아가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욱더 나아가 카이 버드&마틴 셔윈의 1천페이지 짜리 평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1945년 이래로 마음 속에 폭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무기였고 다음에는 외교수단이었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경제이다. 그와 같이 강력한 물건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골렘이 바로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폭탄의 논리, 그것에 대한 믿음, 그것이 만들어 낸 비전이 바로 폭탄의 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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