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폭탄의 시대 선사하다

2023. 8.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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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사진 1
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작품 ‘오펜하이머’는 영화를 만들 때,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이 있을 때, 감독이 지니고 있는 원작 해석 능력과 응용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다. 이번 영화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마치 스스로가 이론물리학의 태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된 것처럼 영화에 과학적 창의력이란 창의력을 몽땅 쏟아 부어서 만든 느낌을 준다. 놀란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25년간 공들여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이런 영화를 두고 ‘기념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터스텔라’ 이후 놀란의 또 한번의 걸작인데, 놀란이야말로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훔쳐 영화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가혹한 형벌을 받아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혔지만 놀란은 대중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을 것이다.

놀란 감독, 세계 영화계의 프로메테우스

원작에 대한 해석 능력이 뛰어 났다는 것, 쉽게 말해 원작을 줄이고 늘이며, 몇 개의 에피소드를 합치거나 한 개를 몇 개로 나누거나 하는 과정에서 그럴듯한 윤색으로 원작을 재창작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해냈다는 것은 몇 가지 대목에서 추출돼 나온다. 예컨대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이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는 군복 재킷을 벗어 뒤에 서 있던 부관 케네스 니콜스(데인 드한)에게 집어 던지며 ‘세탁소에 맡기고 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원작에선 오펜하이머의 조수인 로버트 서버가 목격한 얘기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가 직접 언급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곧 오피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대령이 부관을 대하는 걸 보면 일개 물리학자를 어떻게 대할지 알겠군요.” 캐릭터들을 압축시킨 의미있는 윤색이다.

오펜하이머는 이론 물리학 뿐만 아니라 언어 면에서도 천재적이었던 바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는 친구이자 1941년 핵자기공명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데이빗 크럼홀츠)와 기차를 타고 학회를 가는 장면에서 언급시키거나(너는 네덜란드어까지 한단 말야?) 연인인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이 그와 섹스를 나누다가 책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시집을 갖고 와서는 그에게 그걸 읽게 하고는 그 발음을 들으며 다시 섹스를 계속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이야기의 질감이 너무 깊고 풍부해서 속수무책으로 그 내용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놀란은 이를 통해 인간은 역사 속에 있는 존재이며 과거란,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역설한다. 인간이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는 구속이 아니라 미래에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시네마 역사
1920~60년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오펜하이머 같은 날카로운 지성은 몇몇 시기에 큰 부침을 겪었다. 그건 물론 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이었겠으나,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1936~39년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과 1941년의 일본의 진주만 침공이다. 이때 사람들은 한마디로 ‘휙휙’ 정신이 바뀐다.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자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모두 프랑코 총통의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으로 합세한다. 그 과정을 그린 소설과 영화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며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1943년 주연으로 나왔던 동명의 작품이다. 앙드레 말로의 『희망』 역시 스페인 내전 참전을 경험으로 한 것이다. 『어린 왕자』를 써 전 세계 수십억명의 독자를 가진 생떽쥐베리도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다. 로버트 카파의 그 유명한 사진 ‘쓰러지는 병사’도 이때의 사진이며,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쓴 것도 스탈린과 프랑코 총통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때의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화두이자 적(敵)은 파시스트였다. 프랑코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이후 나치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향하게 된다. 이들은 파시스트들에게 대항할 무기로 공산주의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 같은 이론 물리학자도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됐고, 이때의 행동들이 평생 그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인생을 옥죄게 된다. 그 과정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된 테마이기도 하다. 미국의 반공 이데올로기, 냉전의 국제 정치상황, 극우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이 일으킨 광풍의 시대가 이 천재에 대해 어떻게 마녀사냥을 벌였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건 꼭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역사 속 어디에서든 툭하면 벌어지는 일임을 역설한다.

“1945년 이래 마음 속에 폭탄 갖게 됐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공산당원이었던 적은 없으나 공산주의 사상에 꽤나 심취했던 오펜하이머가 국가에의 헌신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41년의 진주만 침공이다. 그는 이때 이데올로기에 앞서 전쟁의 참극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고 원자폭탄 제조에 열을 올린다. 그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앞서는 것이 인류의 생존이며, 전쟁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믿었다. 작은 파괴로서 큰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파괴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직관이자 냉철한 과학적 사고의 결과물이었고, 그래서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나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Jr.)와 달리 가공할 무기인 수소폭탄의 제조에 반대한다. 놀란의 영화는 양측의 갈등을 비교적 소상하게 그려내는데,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일 수 있다는 걸 추궁하는 청문회와 스트로스의 상공부 장관 인준 청문회 장면들을 오가며 당시의 역사가 얼마나 굴곡지고 굴절돼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오펜하이머’가 현대사를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다이나믹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핵 무기가 지닌 공포를 다룬 영화들은 많은 듯 많지 않다. 일반인들의 뇌리에는 사라졌지만 스탠리 크레이머가 1959년 연출한 ‘그날이 오면(On the Beach)같은 영화가 시초 격이었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 프레드 아스테어 등이 나왔다. 핵전쟁으로 북반구는 완전 파괴됐다. 잠수함을 타고 있어 이 사실을 몰랐던 함장과 대원들은 남반구의 중심인 호주 연안 해변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실을 알게 된다. 호주도 방사능 오염의 시간이 머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핵 공포에 아랑곳 없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파티를 즐긴다. 지구는 이제 곧 끝장날 것이다. ‘그날이 오면’은 왓챠 같은 국내 OTT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은 미소 냉전이 극에 달한 때인데, 그럼에도 영화는 냉전의 끝이 공멸일 수 있다는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었다. 오펜하이머가 만들어 낸 ‘폭탄의 문화’ 현상 중 하나였던 셈이다.

지나친 비극은 곧바로 영화나 그림, 음악, 문학으로 표현되기 힘들다. 사람들의 심리적 내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9년은 서서히 상처를 씻어내기 시작한 때이다. 프랑스 알랭 레네의 명불허전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이 만들어졌던 때도 1959년이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것이 1945년 8월 6일. 14년이 지나서야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셈이다. 프랑스 여배우 엘르(엠마누엘 뤼바)는 히로시마에서 일본인 건축가 루이(오카다 에이지)를 만나 짧은 사랑에 빠진다. 나치 점령 시절 독일군을 사랑했던 엘르는 전후 그의 처형 과정을 목격했던 상처를 지녔고 그런 아픔을 히로시마에 와서 똑같이 느낀다. 그러나 두 연인은 정신적 상흔을 딛고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의 아픔은 결코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원자폭탄을 만든 인물이 아니다. 그가 나중에 원자력 위원회 비밀정보 사용허가가 완전히 취소되는 등 기복을 겪었다는 얘기들도 먼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우리에게 폭탄의 시대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오펜하이머와 당대를 같이 했던 에드거 로렌스 닥터로우의 분석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 나아가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더욱더 나아가 카이 버드&마틴 셔윈의 1천페이지 짜리 평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1945년 이래로 마음 속에 폭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무기였고 다음에는 외교수단이었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경제이다. 그와 같이 강력한 물건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골렘이 바로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폭탄의 논리, 그것에 대한 믿음, 그것이 만들어 낸 비전이 바로 폭탄의 문화인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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