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AI 특이점과 오펜하이머 모멘트
인류 첫 핵개발 역사와 오버랩
정치·자본에 악용되지 않도록
국제적 합의 통한 통제 나서야
원고 마감에 허덕일 때마다 생각했다. 원하는 글을 뚝딱 대신 써 주는 기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넋두리였을 뿐,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시집이 발간되고 AI가 쓴 단편소설이 신인상을 받는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심경이 복잡하다. AI가 인간의 창의성까지 모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놀라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게 아닐까란 두려움…. 글 쓰는 동료들과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조만간 우리 모두 손가락 빨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물론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가령,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에 대한 가짜 영상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은 피해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날 당신이란 사람의 과거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떠올라 약점이 될 때다. 누가 당신의 말을 믿어 줄 것인가.
이쯤이면 ‘터미네이터’처럼 AI가 인간을 역습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 박사는 구글을 퇴사하면서 “그동안 내가 한 AI 연구에 대해 후회한다”는 발언으로 AI 업계에 충격파를 안겼다. AI의 위험성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기 위해 구글을 나왔다는 그는 컴퓨터가 무엇을 학습하든 인간을 능가할 거라고 경고한다. “AI 기술이 적용된 ‘킬러 로봇’이 현실이 될까 두렵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힌턴의 후회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 실험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후회와 오버랩된다. 나치 독일이 가공할 무기를 먼저 개발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으나, 결과적으로 지구를 공멸시킬 수 있는 위험을 열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후 핵폭탄 개발 중단과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하다 축출된 인물. 마침 크리스토퍼 놀런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과학이 정치·사회적 상황에 맞물릴 때 어떤 연쇄·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가를 지켜본다. AI 과학계가 요즘 시기를 ‘오펜하이머 모멘트(새로운 기술로 의도치 않은 결과가 초래되면 과학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는 뜻)’라고 부르는 것을 상기했을 때, 영화가 세상에 나온 시기가 절묘하다.
AI가 특이점을 넘어 인간을 위협하는 날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건 현대사회에선 환상이라는 것. 핵발전, 신약 개발, 코로나19 대응 등이 그랬듯 인공지능 발전 역시 순수과학만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순진하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실리가 있고, 자본의 힘이 있다. 국제적 합의를 통한 통제가 없다면, AI로 뭔가를 얻으려는 이들의 무분별한 행보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 스스로를 파괴할 운명 속으로 집어넣은 핵무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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