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분출·추동한 ‘잠복 감정’[책과 삶]
마주
최은미 지음
창비 | 320쪽 | 1만6800원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삶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 문학의 한 기능이기에,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 ‘포스트 코로나 문학’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마주>의 시기적 배경 역시 팬데믹을 관통한다. <마주>가 감염병의 양상이나 직접적인 피해 여파를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이름을 높이고 있는 최은미는 불가피한 격리, 상호 의심의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미묘하게 변해갔는지를 살핀다.
나리는 공방을 운영한다. 나리는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는 학원 차량 운전사 수미와 친해진다. 나리는 학원 줌 수업 중 수미의 딸이 켜둔 화면 너머로 수미가 홀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본다. 나리는 수미의 딸에게 얼른 집에서 나오라고 권하고, 이후 수미는 나리의 공방으로 피해온 딸을 만나지 못한 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2개월 이상 격리된다. 퇴원 이후 나리와 수미의 생활은 이전과 비슷해지지만, 서로를 대하는 둘의 태도와 감정은 달라진다.
나리와 수미는 뚜렷하고 격렬하게 충돌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은 명확히 느끼지만, 모르는 사람은 왜 싸우는지 모를 감정들이 오간다. 이 감정들은 원래 잠복해 있는 것이겠지만, 팬데믹은 이면에서 이 감정들이 두드러지게 추동했다. 최은미는 ‘작가의 말’에 “언젠가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새 인물을 구상할 때면 그의 2020년을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며 “지난 3년의 시간이 어떤 무늬로 그 사람의 오늘에 남아 있을지” 생각해왔다고 적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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