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맏딸의 맏상제-되기
응급실에서 아빠의 곁을 지키며 지난 칼럼이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자마자 아빠에게 보여주었다. 아빠는 힘겨운 목소리로 ‘지금은 못 봐. 나중에’라고 말했다.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밤을 꼬박 새웠지만 아빠는 끝내 그 글을 보지 못했다. 늘 나의 첫 번째 독자였던 아빠는 큰딸을 사랑하는 만큼 날카롭게 비판하고 날 선 지적을 했다. 아빠가 내 글을 읽고 평을 해주지 못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장례를 준비하며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제단에 차릴 꽃과 제상, 조문객에게 낼 음식 등등을 골랐다. 상복은 남자, 여자 인원수에 맞춰서 준다고 했다. 나와 나의 애인인 아빠의 사위가 입을 정장 두 벌, 엄마와 동생이 입을 치마저고리 두 벌을 요청하자 장례식장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정말 정장을 입을 것인지 몇 번 물었다. 상복을 입고 왼팔에 두 줄 완장을 차고 맏상제가 된 내 모습에 가족들은 모두 잘했다고 칭찬했다. 아빠가 좋아할 것이라며.
10여년 전, 할머니 장례식 때 장례식장 직원이 종손을 찾았다. 아빠는 나를 보냈고 직원은 왜 딸이 오냐며 아들이 없는지, 없으면 남자인 친족이라도 오라고 했다. 아빠는 얘가 종손인데 왜 당신이 무어라 하느냐며 따졌다.
말싸움이 커졌고 상중에 무탈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만류에 결국 나는 물러서야만 했다. 아빠는 다음부터는 자신과 똑같이 하자고 약속하며 나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도 달랬다. 종갓집 종손인데 딸만 둘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큰소리에도 맞섰던 아빠였기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맏상제는 부모나 조부모가 죽어서 상중에 있는 맏아들을 뜻한다. 상주 역시 주가 되는 상제로 장자가 된다고 한다. 맏아들이 아니면 맏상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인가. 아들이 아니면 상주도 될 수가 없나. 아빠 장례의 맏상제가 되는 것은 매 순간 당연하지 않은 일을 왜 하는지 이유를 말하도록 요구했다. 한 직원은 ‘상주님, 완장은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갸웃거리며 이유를 되물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이제 사위 분이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에 큰따님께서는 완장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대답에 “아빠랑 약속한 거라서요”라고 응수했다.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어째서 평생 함께한 엄마도, 장성한 두 딸도 아니고 결혼한 지 3개월 겨우 지난 사위가 가장이 된다는 말인가. 가족 모두가 나를 맏상제라고 하는데도. 아들이 없다는 것이 아빠 장례식에서도 서러운 일이 될 줄이야. 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정장을 입고 완장을 차고 맏상제가 되겠다고 한 것이 내 지나친 고집이었나 하는 일말의 마음은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맏딸로서 맏상제-되기를 행하며 조문객을 맞이하고 발인 때는 영정을 들고, 화장 후에는 유골함을 들고 맨 앞에 섰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존재론의 핵심으로 ‘존재(being)’나 ‘소유(having)’가 아니라 ‘되기(becoming)’를 말했다. 되기는 하나의 정해진 점이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 변하는 계속적인 과정이자 중간지대를 의미한다. 나의 맏상제-되기 역시 여성이 맏상제가 되어가는 계속적인 사회문화적 변화의 과정이자 그 중간지대에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계속 아빠와 헤어지는 중일 것이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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