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육사서 홍범도·김좌진 동상 철거, ‘독립영웅 역사’도 지우나
육군사관학교가 25일 교내에 있는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18년 3월1일, 99주년 3·1절을 맞아 육사 내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다. 육사 측은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 논란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숭고한 역사를 지우고 국군의 뿌리와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반역사적’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은 장병들이 사용한 실탄 5만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됐다. 당시 육사 측은 실탄도 제대로 없이 봉오동·청산리 대첩 등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선배 전우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다 불과 5년 만에 독립전쟁 역사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 정부 지우기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이번 결정의 근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육사는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 구현을 위한 자체 기념물 재정비 사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의 지시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육사의 흉상 철거 시도는 정부·여당의 ‘반공 이데올로기 역사 전쟁’의 일환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야당을 겨냥한 ‘반국가세력’ ‘국가정체성 부정 세력’ 발언 이후 당정은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지우기,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지원 등을 밀어붙였다. 독립운동을 했어도 좌파 경력이 있으면 배제하고, 반공이면 친일이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홍범도 장군을 겨냥해 “공산 세력과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편협한 이념잣대로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천박한 인식이 놀라울 뿐이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은 독립전쟁 역사를 뒤집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친일 군인 동상은 버젓이 세우고 독립영웅 흉상은 철거하는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맞냐”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날 “시대착오적 투쟁과 혁명,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진보가 아니며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며 이념 대립을 부추기는 발언을 보탰다. 여권의 반역사적인 인식에 추종하는 흉상 철거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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