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경이 만난 낯선 미국, 강렬한 드로잉으로 만나다
60년대 몰두한 흑백회화 34점
인체드로잉·시집 삽화 최초 공개
“그때 정말 많이 그렸다”고 할 만큼 2년을 매달리니 졸업 무렵엔 ‘아, 이것이 그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끝없는 수련으로 독자적 추상문법을 찾았던 최욱경의 ‘미국 시대’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찾아왔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한국 추상회화의 대표작가 최욱경의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이 열린다. 부산의 첫 개인전으로 2년전 개인전과 달리 강렬한 흑백 작업으로만 채워졌다. 흑백 드로잉 및 판화 26점과 크로키(인체 드로잉) 8점을 소개한다.
개막일 부산에서 접한 이 희귀한 드로잉들은 작가만의 유머를 기반으로 때론 직설적인 제목이 붙여졌던 추상화들과 달리 일기장 속 미완의 이야기들을 엿보는 듯 했다. 표현은 대범하고 솔직하지만, 작가의 외로움이 묻어났다.
1960년대 대가들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엿보인다. 추상으로의 진행은 윌렘 드 쿠닝, 여성 누드 크로키는 고깃덩이처럼 묘사되어 프란시스 베이컨을 연상시키고, 화폭 위 검은선은 로버트 마더웰을 떠올리게 한다. ‘무제(AM I AMERICAN)’(1960년대)에서는 ‘나는 미국인인가?’는 질문을 통해 작가가 이방인으로 낯선 땅에서 작업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 작가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 찾아낸 것은 시와 드로잉의 언어였다. 전시 제목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최욱경이 1972년 미국 체류 중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출간한 시집 제목. 유학 시절에 쓴 45편의 시와 16점의 삽화가 실린 시집은 타국의 생경한 환경과 쓸쓸함 등을 담아냈지만, 삽화는 거침없고 실험적이다. 이 삽화 중 ‘습작’ 등 6점도 만날 수 있다. 크로키와 삽화 대부분이 처음 공개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비판매작인 인물화 ‘무제’다. 자화상일 것으로 짐작되는 작은 그림은 시집 표지로 그린 자화상보다 한층 더 실험적이다. 이목구비가 해체됐고, ‘나는 네가 뭘 하는지 알수 없다. 너를 싫어해 도와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혔다.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여성은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낯선 얼굴을 쳐다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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