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김지나의 그런데 말(馬)입니다]
(시사저널=김지나 아마추어 승마선수)
《블랙뷰티》란 영화가 있다. 검은 털을 가진 말 '블랙뷰티'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다. 초원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자유롭게 살던 블랙뷰티는 어느 날 낯선 사람들에 의해 포획되고,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특이한 것은 말이 직접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들을 동물은 어떻게 이해하는지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블랙뷰티는 망아지 시절을 어미와 함께 보내며 말 세계의 규칙을 배운다. 처음 사람에게 잡혀왔을 땐 자유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곧 새로운 주인, 새로운 친구들과의 삶에 적응해갔다. 안장을 등에 얹고 사람을 태우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말을 필요로 하는 갖가지 현장에 투입되면서 사람을 돕는 '가축'으로서 삶을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다. 승마경기에 나가기도 하고, 관광용 마차를 끌기도 하며, 조난자를 구하는 일에 투입되기도 했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더 혹독하게
말은 인간과 수 천 년 세월을 함께 했다. 기계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전장에서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이성계의 '유린청', 관우의 '적토마' 같은 명마들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역사에 기여한 정도가 사람 못지않게 중요했다는 뜻일 테다.
한국전쟁 때 미 해병대 소속으로 활약한 '레클리스'는 서울에서 태어난 밤색 털의 암말이었는데, 포화가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수차례 탄약을 운반하는 임무를 해낸 충실한 군마였다. 휴전 이후 미국으로 가게 된 레클리스는 각종 훈장은 물론 동물로서는 최초로 하사 계급장을 받기도 했다. 레클리스가 등장하는 미 해병대 사진을 보면 군인들이 그녀를 얼마나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는지 표정에서 드러난다. 레클리스는 그들에게 단지 탄약수송마가 아니라 희망과 웃음을 주는 부대 마스코트이자,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였다.
말은 사람에게 길들여지고 사육되지 않으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멸종위기 단계 중 '야생 절멸' 상태로 분류된다. 우리가 흔히 야생마라 알고 있는 말들은 사람이 가축으로 키우다가 자연으로 되돌아간 경우다. 말이 스포츠 경기에 뛰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거나 여러 가지 노동 현장에서 활용되는 것을 두고 동물학대라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생존하려면 감내해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말 길들이기의 1인자는 단연 몽골 사람들로 꼽힌다.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생활하고 성장한 그들에게 말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몽골인들이 말을 순치시키는 과정은 단순하다. 말을 잡아서 타고, 반항하는 말 위에서 버틴다. 그러다보면 말이 어느 순간부터 등 위에 탄 사람을 받아들이고 명령에 따르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어쩌면 다소 강압적이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실제 몽골인들이 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항상 말이 보이는 제스처에 집중하고 지금 기분이나 상태가 어떤지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만 좋아하는 외승 관광객들에게 냉철히 한마디 했다. 말과 교감하려는 노력을 더 하면 좋겠다고.
홀스맨십, 정복도 지배도 아닌 수평적 관계
말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말과 인간이 신뢰를 쌓는다는 의미다. 인간이 말을 정복하는 것도, 말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도 아니다. 이 수평적 관계에서 리더가 되는 것이 사람인 것뿐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홀스맨쉽(horsemanship)의 본질이다. 그렇게 형성된 말과 인간 사이의 유대관계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한다. 높은 장애물을 뛰어 넘고, 재난현장에서 생명을 구해낸다.
최근에는 플로리다 대학의 자율주행자동차 연구팀에서 말과 사람이 어떻게 파트너십을 만들어 가는지 1년 동안 관찰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과 로봇이 효과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에 단서를 얻기 위해서다. 그만큼 홀스맨쉽의 유용성과 잠재력은 검증된 사실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블랙뷰티는 자신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재회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말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종(種)을 뛰어넘어 서로 교감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인간과 말이 함께 이뤄온 1만년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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