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쌓인 노량진 "한마리도 못팔아…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
양양 수산물 경매시장도 혼란
"물가자미 값 하루새 절반 뚝"
중간도매상도 주문 줄어 걱정
국회 찾은 외식업계 종사자
"우리 먹거리 안전하다고
말해주는게 진짜 지원책"
◆ 수산업 쇼크 ◆
"뭘 자꾸 물어봐요? 뉴스에서 '어렵다'는 말만 자꾸 하니까 손님들이 더 안 오려고 하는구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이튿날인 2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냉동 수산물 점포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던 상인 5명은 "반나절 동안 한 마리도 못 팔았다" "장사가 하도 안돼 가게를 여나 마나 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패류와 게, 새우 등을 판매하는 이 모씨(45)는 "차라리 코로나 때는 사람들이 해외에 못 나가서 그런지 장사가 꽤 됐다"며 "지금은 그때보다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어민부터 도·소매상까지 수산물 업계의 피해가 줄줄이 현실화되고 있다.
수산물 수요가 급감한 탓에 구매가 줄자, 생선을 잡아 경매에 내놓는 어민들이나 이를 일선에 연결하는 도매상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량을 떠안는 상황이다. 40대 상인 유 모씨는 "이렇게 어려울 때에는 수협이나 국가에서 수산물을 사주는 식으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산업 비중이 높은 제주는 타 지역에 비해 오염수 방류에 더욱 민감하다. 이날 제주시 동문수산시장에는 주말을 앞두고 도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실제 수산물을 구입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갈치와 옥돔을 판매하는 70대 한 상인은 "현재 육지에서 들어온 팩 갈치 30개 주문이 전부"라며 "10년 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가 터질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상인은 "동태를 파는 옆 가게 할머니는 어제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제주도에 제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따른 예상 피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의 수산물 피해액은 연간 4483억원으로 예상됐다.
전복 주산지인 전남 완도도 최근 판매가 폭락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복 양식업자 이 모씨(47)는 "지난해 8월에는 전복 가격이 10미 기준(1㎏·10마리) 4만8000원이었는데 올해 들어 점차 소비가 줄더니 최근에는 2만3000원으로 폭락했다"며 "추석 대목을 앞두고 가격 폭락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원 양양군 남애항 내 수협 위판장에서는 이날 오전 6시께 시작한 수산물 경매가 1시간 만에 끝났다. 60대의 한 어민은 "평소 물가자미 20마리가 8000원 정도에 팔렸는데 오늘은 가격이 반 토막 나 최저가 4000원대로 거래됐다"며 "사람들이 (오염수 방류) 소식을 접하고는 수산물을 잘 안 먹을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생선을 싸게 낙찰받은 중간 도매인들 역시 물건을 사겠다는 식당이 줄어 걱정이다. 도매인 홍 모씨(50)는 "수협에서 '어민들이 애써 잡은 고기를 버릴 순 없다'고 하소연해 오늘 입찰했다"며 "가자미를 몇 상자씩 받았어도 지금 사겠다는 식당이 부족해서 팔고 남은 건 고스란히 냉동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횟집도 오염수 방류에 울상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50대 고 모씨는 "며칠 전부터 손님이 30%가량 줄었다"면서 "아직까진 버틸 만하지만 장기간 이어지면 폐업하는 수밖에 없다"며 피눈물이 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오히려 건해산물, 온라인몰에서는 참치캔 등 판매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수산물 안전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면서 방류 전에 만들어진 수산물을 미리 쟁여놓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지난 24일 전체 수산물 매출은 전년 동일 대비 15%가량 증가했다.
이날 손무호 한국외식업중앙회 단장과 전국상인연합회의 추귀성 서울지회장·이덕재 인천지회장·이충환 경기지회장 등 외식업·전통시장 상인회·횟집 종사자 등은 국회에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방류에 따른 피해를 지원하겠다는 정치인을 향해 "우리 먹거리를 안전하다고 말해주는 게 진짜 지원책"이라고 강조했다.
[제주 송은범 기자 / 전남 진창일 기자 / 강원 이상헌 기자 / 박홍주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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