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인사들이 지적 모욕감을 주는 이유[신간]
"카텔란의 '바나나', 뒤샹의 '변기, 뱅크시의 '낙서', 앤디워홀의 '세탁세제 박스'..."
현대 미술은 일반 관람객이 그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지경이 됐다. 관람객들은 이해못할 전시품을 앞에 두고 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미술관 관람을 마친다.
현대 미술에 '무지'한 사람으로 남기보단 현대 미술을 '관람'하러 다니기도 하는 '문화인'으로 여겨지길 기대하는 '지적 허영'이다.
미술관에서 벌어지고있는 이러한 갈등과 부조화에 대해 미술 전공자 출신의 언론인 기국간 박사가 쓴 책이 나왔다. 저자는 학부에서 순수회화를 전공했고 커뮤니케이션 석·박사를 거쳤다. 잡지와 PC통신, 인터넷포털, IPTV 및 신문, 종합편성방송 등에 근무했고 모바일 매체를 직접 창업하기도 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현재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관련 강의를 하고 국방부 국방홍보원 국방일보 편집인으로 근무 중이다.
그가 쓴 '미술 커뮤니케이션'은 현대 미술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반 관람객과 전문가 사이의 간극에 관한 얘기를 다룬다.
저자는 "우리는 미술을 모른다. 우리는 도대체 그것이 '미술'인지 아닌지도 가늠할 수 없다"며 "미술에 대한 '무지(無知)'는 일반적인 학습과정과 달리 '앎'을 추동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모름'에도 부끄럽지 않은, '수동적이며 당당한 무지'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보는 방식'은 가치관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되는데 미술에 대한 '무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미술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생산되는 메시지의 해석은 물론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조차 불가능한 '무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창작자들은 이런 '무지', 그리고 '무지'에 따르는 '예술'의 거룩한 권위를 이용하며 우리를 마음껏 우롱할 특혜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미술계에서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어법을 사용해 일반 관람객들에게 지적 모욕감을 주고 당혹감을 선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또 "그들은 오래된 지식을 자기들만의 언어로 경쟁하듯 작품과 관계없이 쓸데없는 개념을 주고받으며 허세를 부린다"며 "이현령비현령의 숱하게 다뤄진 인기 많은 사회적 담론은, 그들의 비판의식을 자극하고, 서로 형이상학적인 말과 글로 물어뜯으며 그것이 마치 범상치 않은 천재들의 고차원적 토론이라 뻐긴다"고 평론가 등 미술계 인사들의 언어도 꼬집었다.
특히 "이도 저도 불편한 예술가들은,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정치 현실을 개탄하고 항거하는 숭고한 혁명가를 자처하며 자칭 미술 천재들을 천박하게 바라보기도 한다"며 미술계 전문가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어차피 '본다'는 감각적 행위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동시대 미술은 결국 화려하고 모호한 말과 글로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듯 허위의 늪에 빠져있다"며 "미술을 치장하는 헛소리들로 인해 미술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수용자 대중은 미술을 모른다고 포기하고 돌아서는 사람들과, 아는 척 으스대는 고급문화예술의 향유자들로 구분되었고 결국 모두가 온통 '무지'로 뒤덮인 이상한 세계를 건설하고야 말았다"고 개탄한다. 그러면서 "'무지'의 상태에서 멈춰버린다면 다양한 창의적 주관은 사라지고, 지금처럼 객관을 가장한 오래된 '지식'으로 포장된 '미술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며 관람객들에게 '창의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미술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창의적 시각이다"라며 "기술에 기대어 자신의 시각을 잃어버린 대중의 '무지'는 예술을 잃어버리고 해괴망측한 신화로 남게 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현대 미술에 대한 '무지'는 당연하다"며 "다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통찰,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용기'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메시지 생산과 수신자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해설한다.
◇미술 커뮤니케이션/기국간/박영사/2만1000원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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