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비뚤어진 욕망의 광시곡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8. 25. 17: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컬’

외모지상주의 사회서 낙오된

인간들의 좌절과 폭력 다뤄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에

한 번 보면 멈추기 힘들어

어린 시절 춤추고 주목받는 걸 좋아했지만 ‘못생긴 외모’ 탓에 좌절한 주인공 김모미(배우 이한별)는 신분을 숨긴 채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을 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회적 낙인 탓에 좌절하고 꼬이기 시작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폭력이 폭력을 낳는 광기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외모지상주의에 깔린 불편한 욕망과 민낯을 극한으로 그려내며 질문의 답을 향해 내달린다. 지난 18일 전편 공개 후 사흘 만에 누적 조회 수 280만을 기록하며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시리즈 2위에 올랐다.

여러 인물들이 분출해내는 욕망과 살인·성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기괴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도 사실. 그러나 전개에 브레이크 페달은 없다. ‘마스크걸’은 풍자적 메시지를 한편에 품고, 등장인물 간 갈등을 계속해서 조장한다. 몰입도 높은 연출, 서사를 이해시키는 연기력으로 한 번 재생을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작품이다.

지난 2015~2018년 장장 3부에 걸쳐 연재된 웹툰(작가 매미·희세)이 7부작 TV 시리즈로 실사화됐다. 예쁘지 않은 얼굴이 콤플렉스인 여성 직장인 김모미는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과 신분을 가리고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던 중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특히 TV시리즈는 회차별로 김모미를 비롯한 주변 인물 한 명의 서사에 집중하는 ‘멀티 플롯’ 구조를 택했다. 회차 마다 화자가 바뀌며 각 캐릭터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사건도 여러 관점에서 비춘다. 예를 들어, 마스크걸 김모미는 누군가에겐 극악무도한 살인자이자 평생 증오와 복수의 대상인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연민 혹은 동경,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만큼 김모미는 전형적으로 선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연출을 맡은 김용훈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웹툰에서는 모미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데, 실사화됐을 때 (시청자가) 계속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원작은 표면적으로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그 저변에서 인간의 다중성과 양면성을 다뤘어요. 선과 악, 미와 추 같은 개념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이죠. 그래서 이 작품에도 멀티플롯의 구조가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 성형수술로 페이스 오프를 하고 쇼걸 ‘아름’이란 가명으로 제2의 삶을 사는 김모미(나나). 사진제공=넷플릭스
살인 혐의를 자수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김모미(고현정). 고현정은 공허한 눈빛 연기에 거친 숏컷 등 분장으로 삶이 뒤틀린 인물을 표현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마스크걸’ 주인공 김모미의 일대기를 그린 시리즈에서 배우 고현정은 수감 생활과 생의 최후의 모습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강렬한 캐릭터와 이를 십분 살린 배우들의 열연도 화제다. 먼저 주인공 김모미는 신인 배우 이한별에 이어 나나, 고현정이 각 나이대에 따라 연기했다. 여기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을 하며 춤추는 장면은 모델 지지안, 깜찍했던 어린 시절과 연예인을 꿈꾸다 좌절한 청소년 시기는 각각 배우 이하린, 하주애가 연기했다. 극 중 한 인물을 3인, 더 나아가 실제로는 6인이 소화한 셈이다.

혼자서 극을 끌고 가기에도 존재감이 뚜렷한 배우들이 한 명의 일대기를 나눠 연기한 것인데, 시청자의 몰입에 방해는커녕 납득을 시킨다. 제작진은 이한별·나나·고현정 등 세 사람의 연기에 일부러 유사성을 두지 않기 위해 촬영 때도 서로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히 나이만 든 게 아니라 살인과 도망, 친구의 죽음, 미혼 출산, 자수와 수감 등의 굵직한 변곡점을 겪기 때문이다.

배우 고현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작품 제안을 받은 후 심경을 “너무 기뻤다” “항상 비슷한 역할만 했는데 이런 장르물에 3인 1역 작품이 들어오다니, 무조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10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인물답게 길었던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고, 얼굴에 기미를 그리거나 피칠갑을 하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선 출신으로 데뷔 때부터 동안 미모로 주목받았지만 “저도 저보다 예쁜 사람에게 치여도 보고 밀려도 봤다. 살을 주체하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면서 “모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김모미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생생하다. 특히 배우 안재홍의 연기 변신이 화제다. 그가 맡은 주오남은 애니메이션 등에 빠져 망상과 집착 증세를 보이는 외골수다. 안재홍은 몸무게를 10kg 늘리고 머리숱이 적어 보이는 특수분장은 물론, 일본어까지 배우며 캐릭터를 완성했다.

또 그의 엄마이자 집요한 복수의 화신인 김경자 역은 배우 염혜란이 찰진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그려냈다. 염혜란은 앞서 올해 초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보여준 절절한 모성애와는 180도 다른, 광기 어린 모성이 핏빛 복수심으로 비화하는 모습을 섬찟하게 연기했다. 고현정은 이들의 연기에 “배우고 싶다. (나는) 한참 멀었다”며 “그런 좋은 자극을 받았다”고 극찬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