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은의 시선] 할매니얼은 위로다
약과, 흑임자, 인절미, 식혜, 숭늉….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복고 열풍에 전통 간식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카페와 베이커리, 식당 할 것 없이 전통 간식을 가미한 디저트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이처럼 구수한 맛이 인기를 끌면서 입맛이 할머니 같은 젊은 세대를 의미하는 신조어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도 흔히 쓰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할머니 입맛뿐만 아니라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패션 아이템도 화제다.
복고는 불황 때마다 찾아오는 유행과도 같다.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거나 옛것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복고풍이 인기였다. 힘들고 어려운 현재를 잠시 잊고 경제 발전이나 밝은 미래를 그리던 화려한 시절로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듯 겉모습을 치장했다. 이번 복고 열풍도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이닥친 2020년을 기점으로 고물가,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할머니 감성은 과거 복고 트렌드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마치 할머니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음식은 화려하던 때보다는 온정이 가득하던 때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뭘 해도 '오냐오냐' 해줄 것만 같은 할머니 특유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오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어느새인가 가족과 이웃, 동료와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점점 개인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과 거부감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식혜를 마실 때마다 할머니가 떠오른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큰 구릿빛 주전자에 할머니가 밥알을 잔뜩 넣고 직접 끓인 식혜를 내오시곤 했다. 큰 컵에 한가득 따라 주고도 늘 더 마시라며 컵을 비우길 재촉하셨다. 달달한 식혜 국물만 마시고 싶었지만 자식과 손주에게 식혜를 먹이며 뿌듯해하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에 꾸역꾸역 숟가락으로 가라앉은 밥알을 떠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할머니는 노환으로 더 이상 주방에 가지 못하신다. 그래서 그 모습이 더 그립다.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에는 패션과 다른 특별한 힘이 있다. 음식을 먹을 당시의 정서적 경험을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가수 god가 1999년 발매한 '어머님께' 노랫말 가운데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대목에서 어려웠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눈물을 흘린 것도 같은 이유다. 수십 년이 지나도 가장 인기 있는 스낵은 추억의 맛, 새우깡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민텔의 소비자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65%는 음식과 정서적 웰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답했다.
높아진 스트레스에 최근 갖가지 멘탈케어 식품이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위로 음식'은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들과 온정을 나누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맛이면 그만이다. 이번 주말엔 그리운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자주 먹었던 음식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송경은 컨슈머마켓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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